부제가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해의 기록이다. 사회학자 조은 교수가 30대 중반인 1986년 여름, 철거를 앞둔 서울의 한 불량 주거지역에서부터 시작한, 3대에 걸친 25년의 기록이다.
처음엔 연구표적가구 22가구를 선정했고 서서히 사례를 줄여 한 가족에 집중했는데, 상계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이 책의 주인공, 연구 대상자인 금선 할머니 가족이다. 한 가족을 선택 후 연구자의 가장 큰 관심은 빈곤의 세대 재생산, 좀 더 구체적으로 첫째, 가난한 가족에게 주거 공간이 제공되면 빈곤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까? 둘째, 주거 문제가 안정된 경우 빈곤 재생산의 고리가 끊길 것인가? 라는 것이었다. 연구자는 이들에게 주거문제가 해결이 되었으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잠깐 안도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가난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할머니, 그리고 그의 자식과 손자, 손녀 3대에 이르기까지 결국 대물림되었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생각, 가난한 이들은 게으르고 폭력적이고 알콜중독이라서 가난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교육의 부재, 폭력성, 알콜/도박중독, 낮은 자존감이 빈곤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런 편견을 ‘빈곤문화’(오스카 루이스가 1961년 “산체스네 아이들”에서 만들어낸 단어. 그가 말한 빈곤문화의 속성은 50가지도 넘었다. 잦은 폭력, 역사의식의 결여,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 낮은 동기 부여, 약한 직업윤리, 약물,알콜중독, 혼전동거, 성문란, 도박 등등. 이에 대한 반박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왔고 원인과 결과를 도치하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에 마주친 것도 사실이다. p304)라 말한다.
저자가 25년간 지켜본 가난의 실체, 연구 대상자였던 금선 할머니는 이러한 특성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가난이 대물림 되었다. 할머니의 아들인 수일 아저씨는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탓에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결혼식 올릴 돈이 없어 동거부터 했다. 혼전임신이라는 이른바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이라는 “빈곤문화”는 이들 계층에서 일상적이다. 당연히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가출, 성적문란은 일상화되고 알콜중독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연구대상지였던 사당동 사람들은 나름대로 모두 열심히 일한다. 부업으로 못하는게 없을 정도로 단순노동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대부분 영세업체의 일용직으로 일하는 그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임금이 너무 낮기 때문에 가정을 지키거나 가족을 건사할 수가 없다. 연구자는 이들에게 목격되는 빈곤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이 아니라 가난의 결과라고 말한다.
금선 할머니의 아들 수일 아저씨의 막내아들 덕주씨(1979년생)가 처음 소년원에에 가게 된 것은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걸려서였고 그 뒤로도 몇 차례 수감당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덕주씨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모든 것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의 일상으로, 우리가 흔히 "불량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불량하지도 악덕하지도 않은 아이들이라는, “어렸을 때는 다 그래요”라는 말로 자기 동네 아이들의 일탈을 설명한다. 2000년초, 덕주씨는 사회봉사 명령을 지키지 않아 수배자 명단에 들어갔는데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면서 피해 다녔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사회봉사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공소 시효가 끝날 때까지 피해 다녔고 이런 식으로 초범, 재범, 3범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운이 좋으면 위험을 피해 가고, 나빠서 걸리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조은 교수의 표현대로 ‘도처에 지뢰가 널린 상태’다. 운 좋게 지뢰를 밟지 않고 넘어가거나, 혹시라도 밟으면 법 밖으로 나가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빈곤문화는 다음 세대에서 반복된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모른채 당장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너무 쉽게 생각한다. 이런 사소한 전과로 인해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도 어렵다. 먹고 살기 바쁜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적이 없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과 가출을 하고 범죄에 연루되는, “보통의 삶” 밖으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조은 교수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비판만 해서는 안된다며 청년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낼 ‘구조적 완충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 방법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p.s. 조은교수의 첫 2년반의 보고서 발표 때 서울시 재개발 관련 담당 공무원들이 초청되었다. 그들은 보고서(재개발사업이 지역 주민에 미친 영향 : 서울 사당동 재개발지역 사례연구, 조은,조옥라, 서울대학교 부설 인구 및 발전문제 연구소(미간행 보고서), 1988)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젊은 여교수가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다며 세입자에게도 이주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제안에 특히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이 “이주비 타내려고 주민등록 옮겨 놓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세입자들중 한 곳에 오랫동안 주민등록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싼 집을 찾아 계속 이주해야 했기 때문에 한곳에 오래 주민등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같은 사당동 안에서도 수 차례 옮겨 다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보고서에서 주거공간의 탈상품화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대안으로 영구 임대 아파트와 순환 재개발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p37.
어느 출판사의 조은 교수 인터뷰가 생각났다. 가끔 기자들의 질문이,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을 공부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니까, 가난 연구가 역설적으로 값나가는 액세서리가 된 듯하다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렇게 해서라도 가난 연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자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ée, 직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란, 발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발언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25년의 시간동안 옆 자리를 내어준 가족과 덤덤하게 바라본 관찰자 조은 교수, 모두 존경스럽다.
책을 덮은 뒤 내 머리속을 마구 들쑤시고 다니는 단어들. 섣부른 도움, 싸구려 동정심, 밥상머리교육, 측은지심, 감정이입, 가난, 빈곤, 백수, 윤리, 상식, 이웃, 공감, 계급사회, 관망, 위선, 각자도생, 타인의삶,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 최저소득계층, 차상위계층, 중산층, 시혜자, 수혜자, 자본주의, 민주주의,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