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빛 색깔이 눈에 띄는, 파스텔 컬러의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민화의 분위기를 잔뜩 풍긴 채 그려진 어딘가 익숙한 풍경. 그곳이 제주도임을 단번에 눈치챈 나는 이미 그 낯설고도 반가운 묘한 조합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 이렇게나 마음에 들어버릴 수가.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반, 얼른 다음 것을 보고 싶은 마음 반이 내 안에서 몇 번이고 부딪혔다.
세계 여러 곳을 누비다가 이젠 제주에 정착한 지 약 3년이 지난, 동양화과를 전공한 작가만의 제주도 이야기. 다섯 가지 목차 안에 꽤나 촘촘하게 묶여 있는 이야기들은 꼭지마다 그에 걸맞는 그림이 한몸처럼 붙어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손에 놓을 때까지 지루하지가 않았다. 제각기 다르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계절처럼 이 책의 문장들 또한 비슷한 감각으로 읽게 된다. 제주 해녀에서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이유, 부부의 현실적인 생존 혹은 생활 이야기까지 돌아보고 나면 어느새 한 해가 지나가 있듯 한 챕터가 끝나 있었다. 꽃, 하늘, 산, 바다, 동물, 사람. 한지에 채색되었다고 하는 각양각색의 그림을 하나씩 보다 보면 내가 몰랐던 제주의 모습을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 이 책에 담긴 그림 속엔 작가 부부의 영혼이 그대로 담긴 것만 같은 고양이들이 모든 그림마다 자리하고 있는데, 제주에 살기로 결심하고 결국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마음가짐과 삶으로 제주가 더욱 따뜻하게 거듭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엿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온기가 절로 스며들었다. 제주가,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한 기운으로 서로 공존하고 있는지를 느끼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득찬 기분이 한동안 파스텔빛의 은은함으로 머물렀다.
따스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사랑할 이유가 너무 많아서,
나에게 제주는 파스텔빛 그 자체다.-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