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고스트 프리퀀시>는 여느 단편 소설집과는 다르게 단 세 편의 단편들이 모여 한 권을 이뤄내고 있다. 이는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기획된 '트리플' 시리즈만의 구성으로, 책 한켠에 적힌 소개에 따르면 작가와 작품, 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이루어짐을 바란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도 하다.
그래서인가. 유독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작품 너머 작가의 존재를 자꾸만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가 창조해낸 작품 하나를 마주한다기 보다는 마치 창조자의 머릿속 그 자체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혹은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던 것도 같다. 이런 세 편의 소설을 구성해낸 작가는 어떤 이일까. 틈만 나면 인지해보려고 했다. 신박한 듯 난해한 듯한 이야기의 구조가 아마 다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인 듯도 하다. 처음 보는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작가만의 짜임이 있었다.
보통 작가의 말과 해설로 끝나는 것과는 다르게 '운명의 수렴'이라는 작가의 에세이가 마지막에 꾸려져 있는 것이 그래서 좋았던 것 같다. 앞선 소설들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질문과 느낌들에 대해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답을 얻은 기분이랄까. 삶과 죽음, 가족, 글, 쓰기에 대한 작가만의 생각과 감각이 이 소설집 한 권에 잔뜩 칠해져 있어 개인적인 취향과는 달랐지만 여러 부분에서 주목하며 읽었다. 읽는 내내도 그렇고,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어느 무의식 속에 깊게 빠진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곳은 작가의 무의식일까, 나의 무의식일까. 그런 생각에까지 한없이 잠겨내려가는 소설이다. 어느덧 소설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맞고, 결국 그 어떤 질문도 쉽게 마무리짓지 못한 채 감상을 마무리해본다.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설가는 다시 불을 끈다. 주위를 더듬어 의자에 다가가 앉는다. 거기서 그가 하는 것은 단지 듣는 것이다. 어둠 또는 희미한 분광의 심박을 헤아려보듯, 작은 녹음기의 두 귀를 앞으로 내민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