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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모자를 쓴 여자
  • 권정현
  • 11,700원 (10%650)
  • 2021-09-30
  • : 62

기묘한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한 여자가 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유모차 안에 있어야 할 아이가 비정상적으로 목뼈가 꺾인 채 아래로 떨어져 있던 것이다. 그렇게 여자는 채 세 살이 되기 전 첫 아이를 떠나 보내야 했다. 여자는 생각한다. 어디부터가 잘못이었을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생각한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가족의 평화와 안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어찌 보면 죄책감으로 제멋대로 피어올랐을 생각은 곧 의심이 되어 상상 이상의 곳까지 퍼져 나가고, 그것은 돌고 돌아 다시 스스로에게 다달으면서 더욱 집요해진다. 여자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미심쩍은 일들은 그렇게 진실과 허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어가며 또 다시 끝없는 의심과 집요를 이끌어내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모두를 이끌어 완전히 뒤섞어 놓는다.

아이를 잃은 자의 고통은 그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없음에서부터 그 고통을 짐작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짐작조차도 감히 불가할 정도의 고통과 혼돈으로 서사의 감각들을 조금씩 일깨워낸다.

이야기의 초반,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균형을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 주인공의 상황 자체에만 집중해보는 시도에도 잠시, 정도도 모르고 한없이 깊숙한 곳으로,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고 엉키며 뒤섞이는 혼돈과 불안 그 자체의 이야기에 어느 순간부터 정신이 혼미해졌다. 당장 벗어나고 싶을 정도의 괴로운 혼란이었는데, 이것은 사실 '민'의 내면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건 오직 민의 이야기이자 내면뿐이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기이한 사건과 '민' 자신만의 심증으로 엮여져 나가는 진실 혹은 망상은 쉽게 그 어느 한 곳으로도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짐작할 수 없는 짐작으로 거리를 둔 채 시선을 유지하려는 태도는 점차 흐릿해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혼란에 동화되어 어느새 주인공과 같은 물음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하지만 결국 남게 되는 건 결국 감각뿐이다.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한 여자의 고통이 가득 담긴 본능만은 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책장을 겨우 덮었다. 그것만으로도 현실보다 감각이, 감각보다 짐작이 얼마나 가벼운지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원인이 아닌 결과만이 존재하는 듯한 사실과 결국 파멸이 이끌어내는 것이 또한 파멸이라는 것이 이 책을 덮고도 오랫동안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오직 외로움과 고독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언제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진실을 물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결과와 벌어진 사건만이 그녀가 처한 상태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진실은 물속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모든 게 민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치자. ....(중략).... 그들의 불행에 개입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민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자신에게 치료를 권하고 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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