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는 것 같기도, 혹은 소설가의 문장을 읽는 것 같기도 한 이 책은 작가가 곧 자신을 죽여나갈 뇌종양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인가, 한 페이지나 두세 페이지로 다소 짧게 이어지고 있는 글묶음들을 그저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그저 숙연하게 문장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작가이자 인간이자 죽음을 앞둔 자로서 그가 써내려간 글엔 과연 어떤 생각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미리 안타깝기도 한 마음으로. 그러나 작가였던 그가 여전히 작가인 채로 읽고 쓴 글엔 어떤 특별한 마음가짐이나 시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곁에 둔 심정으로 써내려간 글엔 죽음뿐 아니라 삶 또한 가득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인간이기도, 언젠가의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는 데 별다른 차이가 없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 같은 것들을 조금씩 접어나가야 했다. 물론 여전히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한편, 대신 그의 생각이 담긴 문장과 순간 순간이 담긴 장면들 자체에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글 한 조각에도 담겨 있었듯이 그곳엔 오직 죽음 또는 삶만이 아니라 죽음과 삶 모두가 함께 담겨 있었고 그 자체가 모든 인간이 경험해나가는 삶 자체이기 했기에.
한 번쯤 인간으로서 떠올려봤을 질문과 잠자코 외면했던 생각들을 주저없이 드러낸 몇몇 문장들은 그래서 오래도록 내 마음 안에 남기도 했다. 또한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기도 했고.
공감과 위안, 마찬가지로 깊어지는 생각과 불안 등이 전해지는 그의 생각의 깊이는 깊고도 단단하며 동시에 삶과 죽음 모두를 관통해낸다. 결국엔 언제 어떻게 정해지든 아무튼 죽음을 앞둔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하나 하는 물음을 결코 놓을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금 느끼며 보게 되는 이 책의 철학적 문장들은 그렇기에 살다가 한 번쯤 다시 꺼내보고 싶어진다. 느슨하게 붙잡고 있던 삶의 끈을 다시 제대로 움켜쥐고 싶은 마음이 바로 이런 순간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듯도 하니까. 그곳엔 비관과 희망이 함께 있을 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짧은 순간순간, 수만 가지의 이유로, 인생은 굉장히 명징하게 보이고 의미로 흘러넘치기도 하다. 그러다가 거의 정확히 같은 시간만큼 아주 짧은 순간, 인생을 살아야 할 모든 이유와 위안이 사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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