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크 바벨의 죽음.
사람들이 침묵의 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 후에야 바벨은 침묵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깨달았다. 음악을 들을 때 그는 더 이상 음표를 듣지 않고 그 사이의 침묵을 들었다. 책을 읽을 때 오로지 쉼표와 세미콜론, 마침표와 뒷문장의 대문자 사이의 여백에 집중했다. 방 안에서 침묵이 모이는 곳도 발견했다. 커튼 주름이 접힌 곳, 움푹 파인 은식기, 사람들이 그에게 말할 때 그는 그들이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들었다. 어떤 침묵의 경우는 그의미를 해독하게 되었다. 단서는 없고 직관만 있는 어려운 사건을해결하는 것과 비슷했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선택된 직업에서 다작을 하지 않았다고 아무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침묵의 완전한 서사시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당신의 아이가 하느님이 존재하느냐고 묻거나 사랑하는 여인이 당신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침묵을 지키기란 어려웠다. 처음에 바벨은 ‘예‘와 ‘아니오‘ 라는 두 단어만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단어만 말하더라도 침묵에 담긴 그 미묘한 유창함을 잃어버리리라- P161
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그를 체포하고 빈 여백뿐인 그의 원고를 모조리 불태운후에도 그는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이 머리를 한 대 치거나 군발로 사타구니를 걷어차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침내 총살대가 눈앞에 다가오자 작가 바벨은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을감지했다. 총들이 그의 가슴을 겨냥할 때 침묵의 풍요로움이 실은말하지 않은 빈곤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침묵이 무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총에서 총탄이터져 나올 때 그의 몸은 온통 진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일부는 통렬히 웃었다. 늘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침묵에는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P162
그들은 다른 종(種)이었다. 확실히 다르다고 리트비노프는 생각했다. 이제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자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단어의 페이지를 보았다면 친구는 주저함과 검은 구멍, 두 단어 사이의 가능성이라는 들판을 본 셈이다.친구가 얼룩진 빛과 도주의 행복감, 중력의 슬픔을 보았다면 그는참새라는 구체적인 형태를 보았다. 리트비노프의 삶은 실재의 무게를 즐기는 것으로 정의된다. 반면 친구의 삶은 비타협적인 사실로가득 찬 실재를 거부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리트비노프는 어두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무언가가 벗겨져 나가면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이었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창성을 발휘할 잠재력은 전혀 없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가 속속들이 잘못되었고,
그날 이후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그를 낙담시킬 수는 없었다.
이사크 바벨의 죽음 밑에 종이 한 장이 더 있었다. 리트비노프는자기연민의 눈물로 코 끝이 찡했지만 계속 읽었다.
-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