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보라도 창문 앞에 있으면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가 되는 법이다.- P12
용서하려고 노력했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분노가 나를 압도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 안의 추악한 심성이 밖으로튀어나왔다. 그렇게 쓰디쓴 감정에는 어떤 만족감도 있었다. 스스로불러들인 일이었다. 밖에 서 있던 그것을 안으로 불러들인 셈이었다. 내가 세상을 노려보자 세상도 나를 노려보았다. 우리는 서로 혐오하며 얽혀 있었다. 나는 사람들 면전에서 문을 쾅 닫곤 했다. 방귀- P31
가 뀌고 싶으면 그냥 뀌어댔다. 손안에 동전을 쥔 채 출납원들이 동전을 떼어먹으려 한다고 욕하기도 했다. 하루는 내가 비둘기에게 독약이나 먹여대는 미친놈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나를 피해 다녔다. 나는 인간 말종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제로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오래전에 내 분노를 공원 벤치에 내려놓듯 내려놓있다. 그런데도, 너무 오래전의 일이어서다른 식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중얼댔다. 너무 늦은 건 아니야. 처음 며칠은 어색했다. 거울 앞에서미소 짓는 연습도 했다. 결국 돌아왔다. 나를 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내가 가게 놔두자 무언가가 나를 가게 놔주었다.- P32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머리만 그리려면 전신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줄리언 외삼촌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파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든 풍경을 포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한정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하늘을 전부가진 척하는 것보다는 어떤 것을 아주 조금만 갖는 편이 우주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엄마는 이파리나 머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선택했고, 아빠에 대한 그 하나의 감정에 기대고 싶어서 이 세상 전부를희생했다.
- P67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쯤에 너는 다 자랐지만 어린아이처럼 길을 잃었다고 느꼈다. 너의 자존심이 무너졌지만 그녀에 대한 너의 사랑만큼 크다고느꼈다. 그녀는 사라졌다. 남은 거라고는 울타리 옆에서 자란 나무처럼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자랐던 너의 공간뿐이다.
오랫동안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마침내 그 공간이다시 채워졌을 때 너는 다른 여인을 향한 새로운 사랑조차도 알마없이는 불가능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빈 공간은 없었을 테고 또 그걸 채울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P83
뚜렷하게 분리가 되어 있는 이세상, 그래서 그것을 이겨내고 서로 가까워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있는 이 세상에 감사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차이의 슬픔을 절대로 잊을 순 없지만.-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