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는 희생과 사랑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강아지똥 역시 예외는 아니다. 더럽다고 놀림받고 슬퍼하는 강아지똥에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고백하는 흙덩이. 흙덩이는 밭에서 식물을 잘 키워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한 죄책감을 가슴 속 응어리로 안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흙덩이의 고백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게 정말 흙덩이의 잘못이란 말인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지 않아 식물이 말라버린 건데... 안타까워 할 순 있겠지만 흙덩이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지나친 선의라고 해야 할까?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서로서로 책임감을 갖고 사는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면 될까? 하지만 그러하지 않아도 될 것에 스스로를 상처내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생기발랄함을 앗아가버린다. 비를 내리지 않은 하느님은 이런 흙덩이를 보고 "아암 그래야지"라고 할까? 아니면 "그런 걸 바란 건 아닌데..."라고 할까?
이런 축축하고 슬픈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인물이 있으니...달구지를 몰고 가던 농부아저씨다. 그에게서 생기를 일으키는 바람을 느낀다. 자신의 밭에 있던 흙이라고 소중히 다시 싣고 가는 그 아저씨를 통해 흙덩이는 다시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다. 흙덩이는 강아지똥에게, 강아지똥은 민들레에게,농부아저씨는 흙덩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보살핌의 고리. 이 고리가 멋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