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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 스케치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 15,300원 (10%850)
  • 2009-07-20
  • : 15,291

부러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연주곡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같은 제목이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이라는 작품이 책 표지인 이 책의 첫인상은 아주 강렬하다. 그림의 주인공은 한 가운데 새하얀 공주님이지만, 표지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온전히 시녀에게 쏠려 있다. 왕녀가 아닌 시녀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전구가 꺼지듯 어느 날 갑자기 빛이 사라져버린 거야(…) 그때 알았지, 인간의 영혼은 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186p)

 

책의 구성이 참 독특하다. 하나의 이야기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두 개의 결말로 끝이 난다. 세 사람의 인물 위주로 전개되는데, 액자 식 구성의 반전이 극의 안타까움을 한껏 끌어올린다.

작가는 이 소설을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고 밝혔다. 항상 아름다운 미모의 주인공을 다룬 소설들과는 확실히 색다른 점이다. 하지만 그저 외모에만 비중을 둔 소설이 아니라 총체적인 청춘의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우월주의가 만연한 현실에서 ‘못생긴 여자’가 느꼈을 모멸감의 되풀이는 지금 가까운 현실에서 똑같이 일어난다. 《모멸감》(2014, 문학과지성사)의 저자 김찬호는 전통적인 신분질서가 기준을 달리 한 채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외모, 학벌, 돈, 지위 등으로 위계서열을 따지며 신분적 우월감을 느끼는 한국인의 정서에는, 사실 박민규 작가가 말하는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뿌리 박혀 있다. 끝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좀더 완벽한 스펙을 원하는 한국 사회를 향해 작가는 애석함을 감추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308p)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174p)

 

세상을 향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움의 ‘시시함’이다. 사회가 바라는 이상향에 휘둘려 빛 좋은 개살구로 연명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진솔한 목소리로 말한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여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물질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얼굴이다. 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 줄 일도 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몇 줌의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있는 자판들을 어루만지며, 나는 다시 그녀를 생각한다. (193p)

 

누군가 박민규 작가의 소설을 ‘루저 감성’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그의 다른 소설도 그러하듯 그저 한탄만 늘어놓는 ‘루저’의 핑계일 뿐이라고.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는 작가의 생각을 ‘루저’라고 한정짓는 것 자체가 오히려 현실 왜곡의 출발점이다. 정말 ‘핑계’일 뿐일까. 지금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의 삶을 그저 ‘핑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여느 책에서 말하듯 상위 1%가 나머지 99%에게 청춘이라면 당연히 아픈 것이라고 말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격려가 이 시대 청춘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제고해봐야 한다.

 

즉 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219p)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8, 한겨레출판)에서 작가는, 따라 뛰지 않고, 속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이 인생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비교의 함정에 빠져 궁지에 몰리도록 스스로를 부추길 때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살지 말라는 박민규 식 인생론을 떠올려 보자. 더 이상 함정에 빠지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박민규

1968년에 태어났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으며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로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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