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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 스케치
  • 모멸감
  • 김찬호
  • 15,300원 (10%850)
  • 2014-03-19
  • : 6,160

 언제부터인가 쉽게 욱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냥 웃어넘기거나 무시하면 그만인 일에도 사사건건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빈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경쟁사회에서 발버둥치는 현대인에게 종종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생각된다. 대체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 안에서 이런 감정이 언제부터, 왜 생겨난 것일까.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까. 작가는 ‘모멸감’에 해답이 있다고 말한다.

 

‘모멸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다소 생소한 단어지만 사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감정이라고 한다. ‘모욕’과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모멸’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치는 감정이다. 작가는 모욕과 모멸이 보통 동의어로 쓰이지만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모욕’은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인 언행이며 적대적인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는 반면, ‘모멸’은 모욕과 경멸이 섞여 있고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이며 그 목적이나 의도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듯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한국인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모멸감’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로 고찰한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다양한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그 존재를 귀납법적으로 짚어냈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모멸’의 기본속성을 밝히고 비슷한 맥락의 감정인 ‘수치심’의 양면성, ‘모욕’의 기능 등을 여러 가지 사례로 분석했다. 그리고 모멸감이 만연해진 역사적 배경과 모멸이 존재하는 형태를 일곱 가지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정리했다. 끝으로 모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개선하고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며 마무리한다.

 

나는 작가가 주장하는 모멸을 주고받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자본주의에 녹아있는 신분의식과 집단주의, 위계서열에 집중하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절대적인 기준이 돼버렸고 결국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자신의 삶 자체가 수단이 되어 타인의 삶마저 수단으로 인식하는 비인간화된 현실이 도래했다. 신분의식과 집단주의, 위계서열은 이런 현실을 더욱 부추긴다.

 

1950년 6.25 전쟁 이후로 신분제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기준을 달리 한 채 여전히 존재한다. 학력, 빈부, 외모, 직업, 지위 등이 더욱 강력해진 신분질서를 만들었다. 이런 질서들은 자연히 위계서열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구분 짓기’에 여념이 없어졌다. 이를 명확히 드러내는 사례로써 작가는 ‘감정노동’에 대해 역설했다. 책에 실린 사례를 읽어보면, ‘손님은 왕’이라는 슬로건 아래 ‘아랫것’으로서 무조건 굽실거려야 마땅하고 또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한국인의 인식은 거대한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미용실을 찾은 한 20대 후반 남성이 머리 염색을 원했다. (중략) 그리고 디자이너의 지시를 받은 고 씨가 남성의 머리에 염색약을 발랐다. 그러자 그 남성은 정색을 하고 화를 내며 “애 뭐야? 왜 인턴이 내 머리를 만져. 원장 오라고 해!”

 

어느 손님은 매장에서 종업원이 실수를 하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무릎 꿇어. 대학은 나왔어?”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내가 해본 아르바이트의 8할이 서비스직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영화관이다. 회사 방침 자체가 ‘손님은 왕’이었고 그 어떤 요구에도 미소를 절대 잃지 말아야 했다. 한번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개봉되어 미성년자들의 신분증을 검사하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다. 앳된 소녀와 그 엄마가 입장을 하려는데 신분증 검사를 요청했더니, 아이의 엄마는 다짜고짜 큰 소리를 치며 거부했다. “내가 괜찮다는데 뭔 상관이야! 내가 누군 줄 알아?” 그리고 들고 있던 콜라를 집어던지며 막무가내로 입장했다. 그때 나는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에서 오는 모멸감을 견뎌야만 했다.

이런 의식들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려 있기에,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고 지나치게 과민해진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회나 제도 차원 보다 개인의 의식을 성찰하며 자존감을 높여 인간관계에서 존엄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치부가 드러나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만 같았다. 내 안에 존재하는 감정과 잠재되어있는 의식을 객관적으로 마주하기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멸에 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려면 그런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가치를 가격으로 매기는 의식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배려와 존중, 유대감으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요소들을 기준으로 사람의 높낮이를 매기고 귀천을 따지는 것이 우리의 속물적 문화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귀중함을 깨닫고 서로의 존엄을 북돋아주는 관계가 절실하다. (119p)

 

우선 '손님은 왕이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구호는 일본에서 '손님은 하나님이다 お客様は神様'라는 말이 한국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중량)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감정노동이 엄청나게 가혹하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손님들 역시 매우 깍듯하기 때문이다. (216p)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그가 느끼는 바를 말했다.

"얘야, 마치 내 가슴속에서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는 것 같구나. 한 마리는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고, 화가 나 있고, 폭력적인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사랑과 동정의 마음을 갖고 있단다."

손자가 물었다, "어떤 늑대가 할아버지 가슴속에서 이기게 될까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 (291p)

 

타인 위에 군림하지 않고 위엄을 누릴 수 있을까.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기품은 어디에서 우러나올까. 품격은 겉멋이 아니다. (중략)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307p)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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