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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_grimm님의 서재
  • 우리의 사람들
  • 박솔뫼
  • 12,600원 (10%700)
  • 2021-02-10
  • : 1,351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이야.



독특한 언어와 예상을 뛰어넘는 흐름으로 조금 낯설지만, 긍정이게 되는...글.

실제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가능했을 수도 있는 삶의 조건들을 가정해보며, 

그상상대로 살아갔을 누군가의 삶을 그리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의 사람들>의 화자는 친구들이 가기로 했던 숲에 가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반대로 숲에 간 친구들을 상상하고. 숲에 간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걷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지금 이곳에 혼자 살고 있는 나 역시도 어딘가에서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그런 세계가 있으리라는 것을 깊고 가볍게 믿는.

 



<건널목의 말>의 나는 생활을 위해 말(言)을 하고 서울에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말과 추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는 ‘말을 묻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땅을 파서 말을 묻으면 말들도 흩어질 것이고 추위도 달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아주 잠깐 이초쯤 회사에 너무 가기 싫어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화자는 차라리 ‘동면하기’를 상상한다. 

 



<펄럭이는 종이 스기마쓰 성서> 꿈속에서 여러번 등장한 말 ‘스기마쓰 성서’에 사로잡혀 꿈속 장소를 직접 찾아가보기로 한다. 스기마쓰 성서가 전시되던 곳은 부산의 한 고택이었는데, 막상 도착하여 산책을 하다보니 꿈에 관한 것은 멀리 사라지고 만다. 때때로 잠에서 깬 뒤에도 비몽사몽 헤매다가, 돌연 일상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경험이 있는 우리는 다시금 소설 안에서 안도하고 공감하게 된다.

 



<농구하는 사람>과 <매일 산책 연습> 에서는 과거 이야기 속 사람들의 삶이 상상을 통해 재현되고 반복된다. 
최인훈 소설 <광장> 속 인물들, 시인 김시종과 재일교포 권희로, 영화 <약칭: 연쇄살인마>의 실존 인물 나가야마 노리오의 삶을 소설로 불러와 ‘다시’ 쓴다. 또한,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학생들을 불러와 호명하며 앞선 상상 속 인물들이 ‘거기에 있었듯’ 이야기 속 인물들도 '그곳에 있음' 을 확인한다.

 

 



<이미 죽은 열두명의 여자들과> 속, 김산희는 열두명의 여자들에게 “적어도 열두번 이상” 살해당한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 없는 그는, 여자들에 의해 반복된 죽음을 겪게 된다. 우연히 이 일에 연루된 화자는 그뒤로 계속해서 펜이 달린 수첩을 들고 다니며 그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상상 속 인물들의 삶을 ‘안다’고 확언할 수 없듯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역시 안다고 말할 수 없음이다!!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 이두현 감독은
 '분명하고 중요해 보일 법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프레임 밖으로 미뤄두는데, 작가 역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만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분산시킨다.

또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지만 그의 삶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어떠한 것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곳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 그리하여~ 여전히 같은 곳에 속해 있다는 믿음으로 거기 있어도 괜찮다고!! 

P.76
가끔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저를 위해 무언가를 한순간 포기해주십시오. 저의 고민을 떠안아주십시오. 나 역시 아주 가끔 누군가의 불덩어리를 삼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곧 사라지는 생각이다. 그 때문에 나는 한동안 먼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러나 그것을 어두운 마음 없이 받아들인다.

 

 



P.152
나는 꿈을 너무 믿는 것 같아, 꿈이 나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어디선가 동아줄처럼 내 눈앞으로 뭔가가 내려올 것이라 믿고 있었어 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고. 그래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람이 되기는 하지, 포장된 새 소시지를 뜯는 것 같은 새로움. 여전히 잠과 꿈에 대한 믿음을 그대로 가진 채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바를 것을 바르고 입을 것을 입고 침대로 향했다. 나는 얼른 자고 싶었고 그래서 굿나잇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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