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설 | 서평
《휴먼카인드》 (리커버 특별판)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Rutger Bregman 지음, 조현욱 옮김, 인플루엔션, 2023.05
■ 한 줄 평
“어쩌면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적 시선에 관한 치밀하고도 따듯한 이야기”
■ 서평
나에게 남은 인류애, 인간을 향한 따듯한 온기는 얼마나 남아있는가.
온갖 미디어가 쏟아내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곰곰이 보고 있노라면. 불쑥 감사한 생각, 안도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자연 상태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인간이라는 그토록 슬기로운 동물이 빚어내는 온갖 사건 사고, 그리고 불행한 증후들의 다채로운 향연. 모종의 불안과 불신은 눈을 감게 하고, 혐오와 허무는 온 심신을 차갑게 식힌다. 직접 경험치도 않은 세계이건만, 이미 세상은 잿빛이라 단정하기에 이른다.
감사하게도. 수십, 수백, 아니 수천의 인간 군상을 만나며 희망을 궁리하고 미래를 노래하는 최고의 직업을 가진 나. 특히, 한창 자라나는 아동, 청소년을 만나 이야기 나눌 때면, 무성히도 퍼져가는 마음의 길에 따듯하고 풍성한 씨앗을 심어주려 부단히 애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미 어디서 배운 것인지,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으로 그들의 마음 길은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이미 단단하고 건조하게 말라버린 땅. 희망의 씨앗을 흩뿌려보지만 그들의 마음 세계는 대체로 따듯한 온기와 애정의 습도가 말라버린 경우가 많다. 이곳에 아름다운 꽃과 초원이 만개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무언가 묘수가 필요하다. 커다란 오아시스던, 따듯한 물과 태양이 가득한 하늘이 몰려오건.
그렇게 좌절의 배를 타고 표류하던 중, 따듯한 빛을 머금은 유럽산 등대를 발견한다. 바로 <휴먼카인드 HUMANKIND>라는 책. 지금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 ‘뤼트허르 브레흐만 Rutger Bregman’이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성악설 기반 통념을 희망의 망치로 깊게 균열 내려는 시도를 알차게 담았다. 이미 작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조금 더 따듯하고 온화한 우윳빛 깃털을 표지에 머금고는 다시 우리에게 나타났다. 영어 부제가 A Hopeful History이고 한국어 부제에서도 ‘희망의 연대기’라는 표현을 쓰니, 포근해진 책의 표면이 더 상냥하게 느껴진다. 이 자체로 핵심 메시지ㅡ걱정하지 마라. 아직 우리 인간에게 희망이 있으니, 조금 힘을 빼고 어서 이야기를 들어줘ㅡ가 전달되는 듯하다.
책은 초반부터 강렬한 주장으로 쐐기를 박는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놀라운 전개다.
“이 책은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중략) 진화에 의해 증명되고 일상생활에서 확인된 아이디어다. 인간 본성의 너무나 본질적인 것이라 눈에 띄지 않고 간과되는 발상이다.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곧바로 혁명을 시작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진정한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되면 다시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만들 것이 확실하다. 그야말로 환각성 마약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도대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 내심은 매우 고상하다는 것이다.” (p. 31)
‘급진적, 본질적, 혁명, 근본적, 환각성 마약’과 같은 강렬한 언어를 이어 배치한다는 것. 그만큼 시급하고 위중한 이야기일 터. 이는 새로운 현실주의(p. 51)로, 유치한 감정적 호소나 유토피아적 망상이 아니다. 통념에 반(反)하는 것은 세계로부터 위험한 존재가 됨을 뜻한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친절히도 경고한다.
“인간의 선함을 옹호하는 것은 존재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중략) 조롱의 폭풍을 뚫고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생각이 무디고 순진해 빠졌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pp. 53-54)
위 경고를 잘 숙지한 뒤로는, 풍부한 이야기와 체계적인 논증이 부지런히 수백 페이지로 뒤따른다. 긴박한 주장을 더 단단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독자를 안내한 뒤, 끝내는 본래 삶의 행성 궤도를 이탈하게 한다. Re-volution. 말 그대로 ‘혁명’이 일어난다. 인간관, 세계관을 전복시킬 선한 이탈이다(내 경우도 상당한 관점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성공적이다).
한 번에 이탈하면 길을 잃거나 탈이 날 수 있으니, 다양한 사례로 천천히 궤도 수정을 이끈다. 특히 호모 퍼피(p. 89) 개념으로부터 사피엔스의 빅히스토리를 조망하는 부분이 익숙하면서도 반가웠고, 특히 심리학을 전공하며 당연시 여겼던, 인간 본성에 대한 왜곡된 실험들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도 충격과 위안을 동시에 받았다. 나아가 앞으로 치유예술교육의 철학에 근간이 될 정도로 도움이 된, 새로운 현실(p. 346)과 비대칭적 전략(p.430) 역시도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유권자, 통계자료에 등장하는 난민, 용의자 사진의 범죄자 등 그들 모두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며, (중략)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p. 503)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비록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p. 516)
인간 삶의 영속을 위한 ‘부정편향’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이지만, 이제 그 전략을 긴히 수정해야 할 때다. 어쩌면. 교육과 치유를 업으로 삼은 나의 정당성이 확보되길 원하는 마음으로부터. 세상과 인간은 희망보단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편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온 것일 수 있다. 이제라도 불신과 혐오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면, 늦지 않았다. 제법 온화한 빛깔을 손에 집어 들고 천천히 그 안경을 벗으면 될 일이다(밟아서 부수면 금상첨화다).
이제 어떤가. 편견의 안경을 벗고 드러난 보드라운 속살의 따스함. 손쉽게 예단하고 믿지 말자. 대신, 최대한 가까이, 그리고 천천히 관조하며 이해의 접촉면을 넓혀가자. 우리는 제법 따듯한 인간인 것을 믿고. 우정과 친절의 전염성(p. 501)이 있음을 믿으며. 서평을 읽은 여러분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한다. 부디, 선행을 부끄러워 말고 벽장에서 나오자(p. 525).
*이 서평은 출판사 ‘인플루엔셜 INFLUENTIAL’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휴먼카인드 #리커버특별판 #인플루엔셜 #HUMANKIND #뤼트허르브레흐만 #김현욱 #인간본성 #서평 #서평단 #서평이벤트 #서평단이벤트 #책 #글쓰기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서평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