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도 고맙다》
- 김재진 시인이 그림으로 전하는 말,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언어
김재진 지음, 김영사, 2022.12
“언어로 드러난 존재 자체의 경이로움, 미학적 책임의 정수”
먼저, 인사부터 해야겠다.
‘작가에게 고맙다.’
책 읽는 내내, 책 제목처럼, ‘고마움’이란 단어가 쉴 새 없이 솟구친다.
참 신선한 자극이다. 더불어 ‘다행이다’라는 안도감 역시 가슴 한가득 뭉근하게 피어오른다. 한 장 한 장 페이지 넘길 때면, 나지막이 행간으로부터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부드러운 음성 속삭인다. 세상과 사람에게 비관과 실망, 허무와 무용으로 환원하려던 요즘. 아직은 아니라며, 차분하게 다시, 질質적 세계로 인도해주는 이 책이야말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예술, 시적 언어의 현현이다. 은폐되었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들...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로도 고맙고 벅찬 밤이다 – <새벽에 용서를> 중에서 (p. 15)”
책을 읽어가는 과정, 그리고 모든 언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는 경험 자체가 고맙게 느껴진다. 스쳐 가는 바람에게도 고마움을 느끼는 작가의 마음 덕분에 바람이 존재함을 새삼 느낀다. 그렇다. 드러나지 않는 구석의 유약한 존재들까지도 작가 앞에선 반짝거리는 것으로 새롭게 드러난다.
“잘난 사람 많은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별처럼 / 아득히 먼 곳에서 반짝거리는 존재들이 있다. / 목소리 내지 않지만 어두운 곳을 밝히는 그들은 / 대부분 이름 없고 약한 이들이다. - <반짝거리는> (p. 16)”
“오늘, 한 독거노인이 빈방에 엎어진 채 발견되어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문자를 받아들고 나는 묻는다. 무엇을 지키려고 애쓰며 살았던가? 무엇을 얻기 위해 여전히 쥐고 있는가? - <강> 중에서 (p. 38)”
그렇다. 작가는 이름 없고 약한 것들,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것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고의가 있든 없든, 차마 보려고 애쓰지 않아 스러져버리는 것들에 다가선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응시하고, 온몸으로 느낀다. 아니, 심지어 맛을 보며, 심장 가까이, 세포 구석구석 내면 깊이 잊힌 그것들을 품는다. 분명 고통일 테다. 하지만 스승이기도 하다.
“치통이 찾아왔다. / 고통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 고통은 단순한 아픔일 뿐이다. / 이빨에게 말한다. / 내 입 안에 있는 너는 / 이빨이 아니라 나의 스승이다. - <치통> (p. 121)”
심지어 너무 당연해서 망각하고 있다가 고통으로서 자신을 알리는 ‘이빨’마저도 스승으로 품는다. 이는 존재와 관련된 모든 타자, 외부를 품는 환대, 사랑에 가까워 보인다.
“이기적인 사람은 /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안다./ 그러나 세상의 진짜 중심은 사랑이다. / 사랑에 의해 세상은 유지된다. // 세상의 중심엔 사랑이라는 수도가 있다. - <중심> 중에서 (p. 205)”
“얼굴도 모르지만 당신이 원하면 /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다. /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다리 삼아 / 이 풍진 세상을 건너가야 한다. / 낱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세월이 가면> 중에서 (p. 228)”
사랑을 중심에 두고 열린 마음으로, 온 존재로 세상을 품는 작가, 아니 한 인간 덕분에 일상에 꼬리를 물고 고마움의 연쇄가 드러난다. 큰일이다. 아니 다행이다. 세상엔 나 혼자가 아닌, 고마운 존재들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도 서평을 빙자하여 고마움의 언어 톺아보아야겠다.
김재진이라는 존재에게 고맙다.
그 존재를 잉태한 자연에게 고맙다.
자연을 소생한 지구에게 고맙다.
지구를 품은 우주에게 고맙다.
...
이런 인식을 하는 나에게 고맙다.
이런 나를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당신과 고양이 에나에게 고맙다.
그리고 또
...
이쯤 되면, 이 책은 단순 에세이라 할 수 없겠다. ‘예술’ 그 자체다. 미학적 태도와 미학적 책임을 차분하고도 충실하게 발휘하다니. 나 따위, 치유예술교육가라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 민망할 정도로 몇 곱절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이 책, 이 작가를 두고도...
*이 서평은 출판사 ‘김영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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