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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님의 서재
  • 말의 트렌드
  • 정유라
  • 15,120원 (10%840)
  • 2022-11-28
  • : 1,489


굳이 비트겐슈타인이나 하이데거 등의 철학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 세계, 그리고 인간 존재에게 언어가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술심리치료, 상담, 진로교육 현장에서 수천 명의 아동 청소년, 수백 명의 성인과 온몸으로 만나고 소통하는 나로서는 말이 곧 마음임을, 마음이 곧 언어임을, 가설에서 확신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신간 <말의 트렌드>는 물론 재미도 있지만, 숙고와 성찰의 촉매제로 들끓어댔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디지털 언어’다. 디지털 네이티브, 포노 사피엔스라 불리는 소위 ‘요즘 사람들’의 언어. 그러니까, 디지털, 온라인, 스마트폰이라는 기술 혹은 미디어가 그저 도구가 아닌, 곧 삶 자체이자 신체인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톺아본다.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말’ 혹은 ‘언어’는 흔히 말하는 문어체도 구어체도 아닌(그렇다고 시時도 아닌), ‘디지털어체’, ‘손말’이다.

 

“글말, 입말이 아닌 키보드와 스마트폰의 자판을 터치해서 탄생하는 ‘손말’이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p. 7).”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언(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말한 ‘미디어는 메시지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혹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구호도). 즉, 전기 에너지로 작동하는 디지털 기기인 스마트폰, 메신저인 카카오톡과 각종 SNS는 인간의 언어를 담아내는 가치 중립적인 그릇(도구)이 아니라, 곧 그것이 언어이자 마음의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곧, (엄지) 손가락으로 빚어내는 디지털 세계의 논리(손말, 디지털 언어)로 세계를 구성하고 해석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대다.

 

“댓글, 메신저, 게시글, 트윗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언어를 사용하고, 새로운 매체에 최적화된 언어가 다시 생겨난다. (중략) 디지털 네이티브가 재정의한 새로운 언어는 이미 존재하는 문법을 계승하고 수정한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아직 침투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문법과 어휘를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와 시대에 적응하려면 지금 이곳의 어휘와 문법을 새로이 익혀야 한다(pp. 10-11).”

 

빅데이터 전문가인 저자가 바라본 디지털, 온라인 손말의 어휘와 문법은 매우 다양하다. 단순한 개념이라 이론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범주로 문법 구조를 발굴하여 지형도를 제시한다. 차근차근 저자의 손을 잡고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트렌드 리포트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차가운 전문가의 손이라기보다, 따듯한 인간이자 이야기꾼의 손임을, 함께 건강한 소통의 시대를 만들어보자는 사려 깊음이 잔뜩 녹아 있다(그렇기에 책 디자인을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을 했으면 어떨까 한다. 책 또한 하나의 언어이자 미디어이므로, 반짝이는 지문과 시퍼런 글자가 서린 책 표지만 보고서는 차가운 리포트로 오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해는 마시라.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따듯한 마음과 의도다.).

 

“디지털 언어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혐오 표현이나 국어 파괴를 옹호하는 입장이 절대 아님을 꼭 강조하고 싶다. 시대상을 반영한 디지털 언어들을 낯선 것으로 치부해 무조건 거부하고 외면하지는 말자는 제안이다. 새로운 언어가 뿜어내는 신선한 에너지를 흡수해서 실생활에서 순환시킨다면 우리의 언어 습관은 물론 감각도 더 밝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p. 16).”

 

하나 더. 이 사려 깊은 마음은 ‘언상(言相)’이라는 말로 갈음한다. 보통 마음이나 삶을 나타내는 신체적 기표를 ‘인상(人相)’이나 ‘관상(觀相)’으로 표현하지만, 저자는 언상이라는 개념으로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마음을 전한다.

 

“사람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 인상이 되고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드러나 관상이 된다면, 우리가 쓰는 말의 향기와 온기는 고스란히 ‘언상’이 된다. 내가 자주 짓는 표정이 내 인상을 만든다면, 내가 자주 쓰는 어휘가 나의 언상을 만든다(p. 331).”

 

개인적으로 이 책이 무겁게 다가온다.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층위의 언어(학문, 예술, 전통 등)가 사장되고, 디지털 문법과 논리가 온 세상을 지배해버릴 것만 같다. 실제 ‘요즘 세대’ 사람을 만나면, 그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언어가 그들의 몸을 빌려 기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무 비관적인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보이는 그 언어들이 우리 생활 세계를 모두 점령했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분명 디지털 논리가 교실에 구현된 것과 같은 서늘함을 느낄 때가 분명 있지만, 분명 그 속에서 새로운 언어, 따듯한 마음으로 그 논리와 구조 사이를 파고들었을 때, 디지털로 포착되지 않는 아날로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말과 언어가 표현되고 생성되는 것을 발견한다.

 

‘디지털 언어’를 제대로 익혀, 그들의 세상에 과감히 뛰어들어도 될 것 같다. 이 책과 함께 라면. 그리고, 그 언어로 유영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새로운 언어를 함께 생성하고 창조해야겠다. 따듯한 언상이 더 많아지길 기원하며.

 

*이 서평은 출판사 ‘인플루엔셜’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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