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쪽을 힘들게 읽고 단지 내가 무식해서인가 정말 고민하다가 결국 책을 덮었다. 화가 나서 처음으로 책에 대해 이렇게 길게 달아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출판사는 무슨 생각으로 600쪽에 가까운 이 책을 이런 식으로 번역했단 말인지. (흥행성도 별로건만)영화에 편승해서 돈벌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과연 에바가 어떤 심리로 말을 하고 있는지. 에바가 쓰는 단어들이 뭘 의미하는지 정말로 알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간다. 이 번역본을 끝까지 다 읽고 진실하게 감동에 찬 리뷰를 적으신 분들을(정말 진실한 감동이라는 전제 하에) 진짜로 정말로 존경한다. 중간 중간 펴보다 보면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는 것은 분명 어렵지 않다. 이 책이 단지 이야기로만 먹고 가는거라면 별로 문제도 안 됐겠지. 앞머리 하루 치의 편지만 읽어봐도 60세가 가깝고 자유분방한 생을 살아오다가 세계구적으로 드문 쇼크를 겪은 여성의 독백체라고는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 도대체. 엄마와 아들이 그 드문 일을 겪기까지의 과정과 고백과 토로가 이 이야기의 핵심인듯 한데. 그리고 그게 달달하거나 무덤덤한 회고가 아니라 불안과 모호가 가득한 분노게이지 폭발 직전의 상태에서 지속되는 토로라면 더더욱 문체는 안드로메다스럽다. 이게 무슨 시나리오도 아니고 이야기만 보고 아 이런 충격적인 사건도 있구나 하고 접어둘 만한 그런 이야기가 절대 아니지 싶은데. 너무나 묵직해서 여간해선 길게 풀고 싶지조차 않을법한 소재를 가지고 왜 굳이 작가가 600쪽 가깝게 썰을 풀어냈는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국어도 영어도 딱히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이라 번역이 구리다고 비난할 수가 없다. 다만 한국어로 된 글을 읽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 책에 쓰인 말들은 도대체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줄글들의 무더기에 불과하단 소리를 하고 싶다. 웹에서 이 책에 대한 오역 지적을 봤는데 그건 정말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다. 영문학과 학부생한테 챕터별로 번역 과제를 내줘도 이거보단 나을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책이면 분명 끝까지 거듭 읽을 수 있고 읽어도 절대로 내놓고 싶지 않을 책인데 이미 중고책이 꽤 나돌아다니고 있는걸 보면. 그 중고책마저도 사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번역 꽤 좋아졌다는 얘기 많이 듣고 실제로도 많은 분들이 힘쓰신 결과 믿고 살 만한 좋은 번역본들이 늘어난 것에 감사하지만 .. 이런 거 하나 나올때마다 그 성과를 다 깎아먹는다는 느낌이다.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인데 다른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종이가 심히 아깝다.
표지조차도. 참 고민 안하고 쉽게 만들었구나 싶다. 원서 표지를 그대로 가져온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띠지도 아니고 겉장 표제부분까지 추천사를 집어넣은 책이라니. 영어권에서 추천이 수두룩한 이 책의 번역서를 추천할만한 용자스러운 미디어나 단체가 과연 나와줄 지 심히 기대된다. 별 반 개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