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감정을 많이 느꼈을까? 아득한 시간을 되돌아본다. 우선 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더라... 세 살 터울의 동생은 네 살이었고 부모님과 함께 우리 가족 네 명은 야구장 옆에 있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러다 주택청약에 당첨된 부모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곱 살 막바지 겨울, 우리 가족은 방이 두 개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게다가 무려 연탄이 아닌 보일러 난방이 있는 곳으로. 아파트라는 거주 공간의 형태가 바뀌고,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냈던 동네에서 타 동네로의 이사는 부모님을 긴장시키면서도 많이 설레게 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사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부모님의 감정에 따라 많이 기뻐했겠지. 나나처럼.
아빠는 자신이 해결사라는 사고뭉치 딸을 번쩍 들어올려 목말을 태워줬습니다. 나나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재미있어서 큰 소리로 웃었어요.
p21
하지만 역시 더 이상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물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친구라고는 동생밖에 없었던 내게 동생과 재미있게 놀았던 시간은 행복했을 것이고, 동생과 싸웠던 시간은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동생과 둘도 없는 그저 좋은 친구가 된 걸 보면 나 역시 나나 아빠와 생각이 다르지 않다.
“나나야. 실은 아빠, 일곱 살 때가 기억이 안 나. 그런데 확실한 건 일곱 살 때 아빠 많이 힘들었어. 울기도 많이 울었던 것 같아. 그런데 참 신기하게 말이야.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단다. 세 개의 달이 뜨고 축제가 끝나면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는 밤이 이어지잖아. 그땐 너무너무 밤이 길고 추워서 이러다 영원히 해가 안 뜰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기거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해가 짠 하고 나타났어. 나나가 왜 힘든지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짠 하고 좋아질 거야. 그러니까 나나도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
p29
여기서부터 나는 나나의 나라로 함께 들어간다. 일곱 살 나나는 이미 그 당시를 잊은 나를 자신의 나라에 초대해 주었다. 나나는 새끼발가락을 아기발가락이라고 귀여운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고, 머리 묶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나나만의 생각으로 안내해 주기도 한다. 동생을 위한 마음, 반려동물을 위한 마음 등 이상하게 나나의 나라에 푹 빠질 무렵, 나나는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꿈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나는 편지를 다시 접어 비행기로 만든 뒤 한동안 손바닥에 올려놓고 비행기 머리를 어루만졌어요. 꿈이 생겼으면 좋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꿈이 있어야 꿈이 이루어지는 거 아닐까? 나나는 자신이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요정이라면 아빠의 소원을 어떻게 이루어줄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빠의 소원은 이상하기만 합니다. "흥! 시시해!"
p92
꿈. 그러고 보니 일곱 살의 나는 매일매일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나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아니 그림 그리기도 좋은데 화가가 되어야 하나? 아니 책 읽기도 좋아, 아니 만들기도 좋아. 도대체 이렇게 많은 꿈 중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거야?" 그런 일곱 살에서 지금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고작, 이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로의 이직? 그것도 용기가 없어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과 현실도피의 모습이 아닐는지 슬쩍 뜨끔해졌다.
"그건 모르겠어요. 더는 사랑하지 않거나 다른 동물이 키우고 싶었나봐요. 그래서 코알라에게 사랑한다고 열 번도 넘게 말해줬어요."
p68
그럼에도 지금의 나를 채찍질하고 싶지는 않다. 인지했다면 삶은 변화 방향이 생긴 거니까. 이 책은 사실 1-2학년 어린이를 위한 동화다. 하지만 일곱 살을 잊은 어른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과연 팽이를 만드는 나나의 아빠는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보다 당신은 꿈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