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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ikesmoothie
1. 보라매도서관. 그때 저는 <아웃사이더>라는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콜린 윌슨의 책은 좀 어렵죠. 중학생이었거든요. 문득. 얇고 단순한 표지의 <섬>이라는 책에 제 눈길이 잠시. 아주 잠시. 머물렀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꺼내지도 않고, 단지 검지손가락을 들어 아래위로 한번 쓸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잠깐. '섬'이란 글자가, 각인된 첫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곧 잊었지만. 그 순간 자체는 어떠한 그림이나 장면처럼, 기억이 나더군요. 가끔, 아주 가끔, 이상하죠?

2. 김한길의 소설에서, 남녀주인공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레스토랑 '섬'이었습니다. 사랑한 남자가 결혼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남자를 사랑했는데 알고보니 결혼한 사람이더라- 였는지.. 불확실한 기억중 확실했던 것은, 그 레스토랑 여주인, 사랑하는 사람이 휴식이 필요할때 찾아와서 머물다 갈 수 있는 '섬'같은 존재로서 자기를 자리매김했었다는 것. 그런 사랑, 그러한 사랑의 법이 있구나..생각했었어요. 단아하고 청초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그 레스토랑 주인이 실제 있다면. 한번 봤음 좋겠다,했었지요. '섬' 이란,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까, '섬처럼'이란 직유법과 '섬으로'라는 은유법을 조곤조곤 씹어보면서요.

3. 이생진 시인이 섬을 돌아다니며 성산포를 책제목삼아 시를 쓰셨었지요. 물론 안도현의 시도 있습니다.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 곳에 파도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겨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 봐라 삶이란게 뭔가 삶이란게 뭔가 너는 밤새 뜬 눈 밝혀야 하리'
사람들 사이에도 여의도처럼 다리를 놓아서 육지로 편입시키기 어려운, 그 어떠한 섬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또는, 사람들사이에서, 섬이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부터, 생명처럼 자라가는 섬의 모습이 차츰 인식되고 '섬'이라는 단어가, 조금 더 뚜렷하게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4. 그리고 다시, 어느날 라디오에 소개된 이야기. 여자는 대학4학년, 친구와 바닷가 여행을 갔다가 카페에서 남자를 처음 보았고, 다 마신 홍찻잔에 입술을 거푸 대면서, 어쩔줄 몰랐다더군요. 그 모습에 아픈줄 오해한 친구가 일어서길 권했고, 아무생각 하지 못한 채, 마침 읽고 있던 책의 한 페이지를 찢어놓고 나왔답니다. 그리고 졸업, 한해가 흘러 다시 그 계절, 그때들었던 그 음악이 들리자, 모든 것이 밀려왔겠지요. 머리를 자르고, 안경을 벗고, 사회인이 된 여자에게, 어느 한 순간 운명의 부딪힘같은 기억이..그렇게 다시 찾은 그 카페에서, 다시 보았답니다. 그 남자. 여전히 말걸지 못하던 여자가 눈물을 흘릴 때, 손수건과 함께 내밀어진 쪽지는 그때 그 책의 찢어진 한 쪽. 군대가기 전, 친구의 고모가 하시는 카페 일을 잠시 도왔었는데.. 해를 넘겨 나온 첫 휴가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왔다가,그렇게 만났다더군요. 두 사람이, 그 다음 이야기는 모릅니다. 이야기보다는 등장했던 책이, 더 중요하거든요. 남의 얘기를 무지 자세하게 기억하는 것 같아 스스로도 놀랍지만, 그 속에 나온 책의 제목이 '섬'이었어요.

5. 장 그르니에. 지나갈 듯한 순간들이 모여서 '섬'에게 저를 인도했습니다. 몇 년전 이었는지 기억도 나지않지만, 카뮈의 서문과 그 몽환적인 분위기에 가슴 설레면서 읽던 책입니다. 오늘, 바하의 토카타와 푸가를 들으며, 촛불을 켜고 있자니, 촛불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책으로 이 책이 떠오릅디다. 마음이 안개낀 섬을 그리워하는 듯해서 꺼내보니, 무지개색연필로 줄을 잔뜩 그어놓아서 어느 문구가 가슴에 맺혔는지 흐려져버린 그 책의 맨 뒷장에 고독하다-고 써놓았군요. 비 냄새처럼 때때로 돌아보게 되는 책, 장그르니에의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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