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 영혼의 손길 (21.08.15)
4년 전 추위가 몸을 에는 듯했던 겨울, 한 전시회를 갔다. 언 몸을 부여잡고 간 곳이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작품이 가지는 의의는 알고 있었지만 다만 그 뿐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그 거대한 의미의 베일을 넘어서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그 어떤 전시회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끌림을 느꼈고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展)이었다.
말라 비틀어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대한 파도처럼 생동하게 요동치는 살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지나칠 정도로 길게 늘어진 몸, 하지만 제 중심을 정확하게 알고 잡혀있는 균형, 읽을 수 없는 얼굴의 표정으로부터 오는 감정의 무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거대한 육체로부터 오는 경외감.
그 조각들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인간 실체에 대한 자코메티의 시선은, 그 어떤 이론보다 날카로웠고 그 어떤 진리보다 진실했으며 그 어떤 예술보다 경이로웠다.
을유문화사에서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나온 [자코메티 영혼의 손길]은, 인간의 진실과 영혼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온 생을 걸었고 그 결과 현대 조각사에서 가장 선구적이고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예술가 자코메티의 삶과 그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책이다. 가족적 배경부터, 탄생, 성장, 죽음까지 자코메티의 삶을 연대순으로 쫓고 있으며 자코메티의 말과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자코메티의 모델이었던 작가 자신의 생각까지 가미하면서 예술가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은 거대한 숫자가 증명해주고 있듯 그와 그 삶을 세심하게 훑고 있다. 마치 자서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코메티가 겪었던 상황과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더욱이 그의 주변인들 예컨대 부모와 동생, 연인과 동료의 그것들까지 담고 있다. 특히 지성과 예술의 폭발적인 진전이 일어났던 20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이끌었던 위대한 예술가와 철학자에 대한 설명과 얽힌 이야기도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굉장히 주변적인 이야기들까지 담고 있어서, 예술가를 이해하기 위한 최대한의 정보 너머의 것들까지 제공해주고 있는 것 같아 부담이 올 수도 있지만, 그 만큼 자코메티에 대한 정보들이 다양하며 방대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대체적으로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기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는 모든 것이 영원히 변했다. … 그에게 삶이란 그 자체의 지속성과 영원성을 가지는 힘이고, 죽음은 단지 운명적인 사건이며 삶의 장엄함과 가치를 약간은 고양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을 분이다. 그런데 이제 순식간에 눈앞에서 벌어진 죽음으로 인해, 그는 삶을 무로 끌어내리는 막강한 힘을 경험하고 존재에서 비존재로 옮겨 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