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어가는 순간(20.12.29)
자신만의 고유한 생을 살아가는 한 명의 개인에게 부여된 삶의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삶을 살기’일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한 개인은 그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존재성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남 자체로서 그 어떤 다른 사람과도 같지 않게 태어났는데 살아감에 있어 다른 누구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은, 얼마 쯤은 어불성설이고 또 얼마 쯤은 삶에 대한 배반일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는 삶을 배신하면서 살아간다. 나를 찾아가는 길이 능히 쉬운 길이 아니므로.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길은 이미 그들의 족적에 의해 충분히 패여 걷고 따르기에 좋은 길이 되어있지만, 나만의 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방이 수풀로 우거진 무변광야를 혼자서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다. 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어떤 맹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며, 또 끝이 어디인 줄도 모르는 길을.
헤르만 헤세는 바로 그와 같은 단 하나의 ’나‘가 되는 것을 자신의 문학적 소명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헤세 그의 삶 자체에서 끝없이 지속되어왔던 분투이기도 했다. 문학과 낭만을 꿈꾸던 어린 헤세는 신앙을 강제하는 고압적인 가정 속에서 신학자가 되어야만 했고 신학교 탈주와 자실 기도의 여러 도망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신, 곧 문학가와 시인으로서의 헤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바로 운명이다. ‘나’로 태어나서 ‘나’로 사는 것. 하지만 그 운명이 목적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삶은 정해진 바가 없이 오로지 나의 내면의 선택에 따르는 결과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운명이란, 내가 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가는 것, 결과론적인 정의를 따를 뿐이다. <내가 되어가는 순간>에 기재되어 있듯, ‘인간은 완전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생성되는 존재, 하나의 시도이자 예감 그리고 미래이다.’
<내가 되어가는 순간>은 헤세의 여러 책들 속에서 이와 같은 문학적 주제의식이 담긴, 적확하고 간결한 문장들을 발췌해서 소개해주고 있다. 예컨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진정한 소명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와 같은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다운 문장들이 담겨있다. 이러한 가슴을 후벼 파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독자인 우리는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과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나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 방황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살아가고 그런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교보북살롱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