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여성의 권리문제가 처음으로 사회적인 논의 대상이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1792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로는 『여성의 권리 옹호』 라는 책을 통해서, 여성에게도 남성에게 부여되는 것과 같은 평등한 기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후 여성들은 사회에 만연해있는 남성주의적 지배 권력에 의한 여성 차별을 의식화하고 그것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억압받고 배제된 여성의 권리를 확장하는 여성 해방 운동은 약 200년 동안 지속되었고 오랜 노고 끝에 많은 성과를 일궈냈다.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 재산을 획득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학교에 들어가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전과 견주어볼 수 없을 만큼 호전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200여 년간의 저항운동과 그 결과로서 일궈낸 여성인권의 향상은 가부장적 사회의 탈피와 완벽한 여성 해방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아직 우리의 사회에는 개선되어야 할 영역들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는 여자와 한 하지만 잘해도 되는 남자의 탄생)』은 이와 같이, 여성의 인권이 어느 정도 개선된 우리 사회에서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는 차별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만나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뿌리 깊은 여성 차별에 대하여.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아버지는 이전 세대에 견주어 보건데 보다 가정적임에 확실하다. 그들은 전보다 더 많이 가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여성 배우자와 함께 아이를 양육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잊곤 한다.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깊숙이 가정에 얽매이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경제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말이다.
사실 여성과 가정이라는 쌍은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익숙한 그림이다. 아버지가 밖으로 일하러 나가시고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우리 사회 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보통의 평균적인 가정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머니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또 기저귀를 갈며 아이들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교육열을 불태우는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모성’이라는 단어로서 논하고 있는데, 이때 저자는 모성이 가지고 있는 어떤 기만성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인다. 모성은 아이를 낳는 여성이라면 천성적으로 가지게 될 본능이라고 믿어지는데, 사실 그것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으며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학습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즉 여성이 아이를 더 잘 키운다는 믿음은, 여성에게만 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주어졌기 때문에 형성된 것에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에게 생물학적 본질주의에서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여성이 원래 집안일을 더 잘할 수밖에 없다는 전언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남자, ‘그러한’ 여자는 없다. 여성보다 남성이 보다 목표를 성취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보다 세심하거나 다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일의 추진력이 좋거나 또 맡은 바 일을 더 잘 완수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여성 역시도 남성보다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는데 능한 것이 아니고 억척스럽거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수줍고 나서는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와 같은 기대를 하는 사회적 시선에 따라, 그와 같은 규범들을 다년간 학습하게 되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따르는 기대에 충족하는 인간형이 된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도식을 대물림한다면, 결국 여성이 잘 배워서 전문직 자리를 잡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고 해도, 결혼과 아이의 탄생과 함께 집과 가정에 복속되고 더 나아가서는 남성의 경제권 속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와 같은 암묵적 동의를 해체해야만 한다. 그것이 귀중한 생명을 돌보고 가정을 수호하는 고결한 여성이라는 찬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성도 여성과 같이 아이를 세심하게 돌보고 집안일을 잘 해낼 수 있으며, 역으로 여성 역시도 그렇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로 보아야만 하지 성별 차의 문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은밀한 차별을 자신의 개별적인 경험을 들춰냄과 더불어 100명의 엄마들을 인터뷰하면서 구체화한다. 남편과 비슷한 위치에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왜 여성들은 그들보다 더 가사와 양육에 얽매이게 되는지, 그 실태와 근원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생물학과 신경과학, 사회과학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진 최신 연구 사례를 통해서 면밀하고 섬세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사고와 그 오류를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든 생각은 나의 남편이 될 사람 혹은 나의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남편이 될 사람에게 꼭 이 책을 읽게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반드시는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지적하다시피 어떤 누가 자신에게 암묵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그와 같은 은밀하고도 달콤한 권력을 선언하고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올바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와 동시에 조금 좋은 세계로 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 이 서평은 교보북살롱을 통해서 책을 수령 후, 전문 서평단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