캇시러에 따르면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인간 그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인간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인간적인 상징들이 포함된 문화들로써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란 말이다.
이 책도 그러한 생각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저자 유현준 건축가는 문화의 최종 결정체인 건축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삶을 해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그러한 인간들이 또 다시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이어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지금의 문화 태피스트리가 지어진 첫 지점으로부터 시작해서 선형적인 시간의 선을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명명되는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를 섬세한 눈으로 되짚으며 따라간다.
이 책은 건축 뿐 아니라 역사, 예술, 과학 등의 여러 가지 지적 분야들을 아우르고 있다. 지리학적 기후로부터 시작해서 피타고라스와 기하학, 노자의 비움 사상, 나일론과 황하 강의 차이, 삼각돛의 발명, 몬드리안의 추상화, 콜더의 모빌 등 다채로운 인문학적 지식들을 도원하면서 건축과 문화, 인간의 상관관계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삶은 늘 어떤 공간 속에 놓여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공간과 유기적인 작용을 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벽이 아닌 기둥을 중심으로 발달한 동양의 건축은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의 경계를 구축하고 있지 않은데, 이와 같은 공간은 집단의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동양 사회와 연결되고 있으며 반대로 벽을 중심으로 발달한 서양의 건축은 외부와 내부가 닫힌 공간으로써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회와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물론 그 역도 그러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공간이 우리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 책은 다채로운 지적 향연을 통해서, 건축과 문화, 인간에 대한 촘촘한 직조물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공간과 그 속에서의 삶을 재고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우리는 어떠한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공간이 나를 더 발전적이고 보다 나아간 삶으로 인도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