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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원  2026-10-23 23:42  좋아요  l (0)
  • # 알라딘 책소개의 ˝책속에서˝ 는 699쪽라 기재 하였으나 659쪽이 맞다.

    이 결론은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진보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과 사회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과 사회가 완전해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음 세기로 넘어가자 개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양의 정신은 과거 지향에서 미래 지향으로 돌아섰다. 이런 궤도 수정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는 묘한 역설에 직면했다.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어 한편으로는 즐겁지만 현재의 상황이 그토록 안 좋다니 자의식과 함께 죄책감이 느껴진 것이다.

    과감한 세력과 신중한 세력의 끝없는 전쟁도 시작되었다. 이들은 다시 미래의 청사진을 놓고 다양한 정파로 갈라졌다. 고대파와 근대파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 세상을 구제 불능의 악으로 보는 기독교의 세계관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데 이제는 고대파도 근대파도 토를 달지 않는 듯하다. 진보의 가능성을 이렇게 긍정하면 세속주의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 본문 2권 ‘어지러운 눈‘ 699쪽에서

    # 아래는 원문 (From Dawn to Decadence 의 349쪽)

    This conclusion was far-reaching. With progress admitted, it follows that man and society are perfectible; and if this is possible, schemes for changing the world should be attended to. By the next century programs of reform began to flow in an endless stream. The western mind had turned from backward- looking to future-making. And when the re-orientation became general, soci- ety was kept in paradoxical discomfort: cheerful because working to improve life, and suffering guilty SELF-CONSCIOUSNESS because present conditions are so bad.

    Also endless was the war between the bold and the cautious, who ended up forming political parties under various names, ultimately shortened to the Left and the Right. These in turn are split into factions by the diversity of hopeful plans, though the ancients and the moderns, who are always with us, now seem to agree that the Christian view of the world as irremediably evil is not absolute. Progress is possible, an admission that points to an ever-wider SECULARISM.

    # GPT에게 번역 시켜봤다

    이 결론은 광범위한 파장을 불러왔다. 진보를 인정하면 인간과 사회도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여러 구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 세기에 접어들자 개혁의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서양인의 사고방식은 과거를 돌아보는 데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보편화되자 사회는 역설적인 불편함에 놓였다.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기뻤지만, 현재의 상황이 그토록 나쁘다는 사실에 죄책감 섞인 자기의식에 시달렸던 것이다.

    과감한 세력과 신중한 세력 사이의 싸움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들은 여러 이름을 내건 정당을 결성했고, 그 명칭은 결국 좌파와 우파로 간략해졌다. 좌파와 우파는 다시 저마다의 희망적인 계획이 다양하게 갈리면서 여러 파벌로 나뉜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온 고대파와 근대파는 이제 세상을 구제 불능의 악으로 보는 기독교적 관점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듯하다. 진보는 가능하다. 이를 인정하는 태도는 세속주의가 더욱 확산될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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