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유당불내증 2009/03/2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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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 미우라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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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 - 2007-07-10
: 511
어린시절, '달린다'는 행위는 나에게 큰 공포였던 기억이 있다. 활기차게 몸을 움직이는 것보단 조용히 앉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던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체육대회나 체력검사를 하는 날이 오면 '어떻게 하면 달리지 않고 피해갈 수 있을까..' 생각하기에 바빴다. 말하자면, 나는 초기의 왕자같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달리기의 매력을 아주 의외의 곳, 독서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나에게 처음 나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은 사토 다카코의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달리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힘껏 달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후에 나에게 더이상 달리는 행위는 공포나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도 꼭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달리거나 걷기를 소재로 청춘소설들은 독자도 달리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역시 마찬가지다. 달리기라는 물리적인 행위에 대한 묘사 뿐만 아니라 하이지,유키,가케루,니코짱,조타,조지,킹,무사,왕자,신동등 10명에 대한 인물묘사도 매우 탁월해서 실제로 그들이 어딘가에 존재할듯한 착각이 든다. 가케루는 고교시절 육상부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켜 결국 퇴출당한다. 그 후로 살 곳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결국 편의점에서 빵을 훔치다가 우연한 계기로 하이지를 만나 지쿠세이소에 입주하게 된다. 그 곳에서 학구파 유키와, 굉장한 흡연량으로 니코짱으로 불리는 아키히로, 유쾌한 쌍둥이 조타와 조지, 퀴즈광 킹, 흑인 유학생 무사, 만화광 왕자, 산골 벽지에서 올라온 신동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로서 10명이 된 지쿠세이소 주민들을 동원해 기요세 하이지는 하코네 역전경주에 도전하려고 한다. 그들의 연습과정을 지켜보며 처음에는 '과연'이라고 반신반의하던 나 또한 어느새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후반, 붉은 띠를 넘겨주면서 부터는 엄청난 속도로 몰입하며 마치 나도 그들과 함께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보면 청춘들의 달리기, 그 과정에서 시련과 좌절, 극복이라는 진부해 보이고 별 것 없어보이는 구성이지만 이를 무력하게 만드는 섬세한 인간에 대한 묘사는 나도 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어지고, 동시에 나 자신을 위로하게 만든다.
혹시 나는 지금 겁먹고 멈춰서있지 않은가? 내 어깨엔 너무나 많은 짐이 얹어져 있고, 내 몸은 굳어있고, 나의 다리는 너무나 힘이 들어서 주저앉고 싶다고. 읽고 나서 왠지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달리기는 커녕 한발짝씩 천천히 걷기도 전에 지나치게 겁먹고 가만히 멈춰서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안된다'고. 하지만 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책장을 넘기는 내내 함께 달리는 느낌을 겪고 나니 나도 달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듯했다. 지금 너무 힘들다고, 혹은 이미 나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운동화끈을 다시 한번 단단히 묶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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