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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h1010님의 서재
  •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박정훈
  • 13,500원 (10%750)
  • 2021-05-10
  • : 1,649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혐오에 빠지는가?” 이 질문에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갈등과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실마리가 있다고 본다. 우선 여성혐오라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차원과 구조적인 차원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벌써 많은 오해가 발생해오고 있지만, 명백한 점은 인종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별에 대한 혐오 역시 구조적 차별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부장사회에 속한 구성원은-여성이건 남성이건간에-이러한 구조적 차별을 내포한 사고방식과 태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은 비평등적인 현상이 비평등적임을 정확히 인지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당연하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의 상당수가 그런 현상을 "자연스러움," "당연함"으로 인지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관점과 경험 모두를 비자연스러움, 그리고 부당함으로 내몰며 자신까지 하나의 집단에 넣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자들의 의견은 필시 거부감이 들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1부: "남성은 왜 억울함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나"와 2부: "언제까지 가해자를 위한 나라일 것인가"를 제시한다.
그는 남성이 남성으로 살아감에 있어 구조적 우위(특권)를 어떻게 누리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일상생활에서의 사례들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리고 특히 p22의 "남성이 딛고 서 있는 권력, 불평등하게 남성들에게만 허용되고 인정된 행위를 통해 '남성'이 만들어진다"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남성성이라는 것이 가부장주의에서 무엇을 함의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말한다. 물론 혹자는 "여성은 반대로 억압만 당하고 사나, 여성이라고 오히려 대우받는 것은 뭐냐, 여성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남성(나)은 보이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부장주의와 남성성이 젠더차원에서의 패권임을 정확히 인지한다면 곧 "당신"의 억울한 사례는 젠더차원에서 패권해체를 외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정치권력, 경제권력 차원에서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다른 패권에 의해 부당함을 겪는 것임을 자각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여성혐오 논쟁에 대해 남성혐오 논쟁으로 맞불을 놓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여성혐오에서는 여성에 대한 단순한 비하, 혐오(dislike), 조롱과 더불어 실질적인 권력적 차원에서의 배제와 차별을 수반할 뿐더러 심각한 (성)범죄등으로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남성혐오에서는 남성에 대한 단순한 비하나 조롱이 존재할 뿐 권력적인 배제와 차별을 수반할 수는 없다. 이는 현 사회구조 자체가 여전히 가부장주의에 머물러 있고, 남성성이 사회의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부," 혹은 "예외적 사례" 등에 속하는 것은 차라리 여성이 가해자인 (성)범죄이지 일반적인-통계상 96%이상을 차지하는-남성이 가해자인 (성)범죄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남성혐오를 주장하는 쪽은 이러한 심층적인 분석 없이 표층적으로 드러나는 눈 앞의 행태만을 가지고 '내로남불'을 외치며 마치 양자가 완전히 동등한 동전의 양면인냥 여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비평등적인 현상을 비평등적이라고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점에 대해 왜 더 일찍 자각하지 못했냐고 나무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러한 부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러움으로 더 이상 둔갑해서는 안된다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이제는 최소한 비논리적인 "역차별"을 논하거나 그러한 외침을 더 거세게 억누르려 하지말라고 타이르며, 무엇이 평등으로 나아가는 길인지를 제시하고 함께 하자는 것일 것이다. p119에서 여성성의 타자화-성적 대상화-와 관련해 "내 주위 남성들이 엉망이 되어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삶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정색하고 "하지마"라고 말해달라는 저자의 외침은 그래서 더 눈길을 끈다.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남성" 역시 오해를 많이 받은 개념이다. '평범한'이라는 단어는 사실 기술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평범한 남성이라고 해서 남성(중심)문화를 공유하며 남성성을 누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p120에서 등장하는 "나는 아니야"라는 키워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지점에 대한 설명을 3부: "누구도 나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로 넘기고 오히려 이대남의 변화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물론 앞의 문단에서 리뷰어가 해석한 저자의 의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키워드를 비효율적으로 제시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소위 '이대남'의 "나는 아니야" 정서는 단순히 586 운동권과 "꼰대"로 치부되는 기성세대 남성과의 다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고 젠더 감수성이 다른 남성 세대보다 높은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이대남 정체성을 보유한 이들은 오히려 가부장주의 문화에서 자신들에게도 구시대적인 남성의 의무와 여성(혹은 약자라고 총칭되는)에 대한 매너(배려와 양보로 총칭되는)만 거부할 뿐, 남성성이 현 구조에서 가지는 우월적 지위자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존재자체를 부인한다. 즉 Cherry-picking-좋은 것만 골라가지는-을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세대는 이미 성평등적인데 왜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느냐고 반문하는 지점은 민낯을 잘 드러내준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지금 어린 세대에서는 성평등이 어느정도 달성됐다고 하는-백번 양보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어린 세대의 여성들이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 진출하여 맞닥뜨려야하는 대상과 구조는 여전히 성차별적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꼴이다. 또한, 그들 세대가 성평등을 이뤘다고 판단한다면 이제 기성세대에서의 남아있는 성차별을 척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합당한 자세이다.
나아가 그들은 기성세대 남성들이 페미니즘 이슈와 여성대상의 정책에 대해 침묵하거나 온정적인 동조(?)를 보이는 것에 대해 "자기들이 범죄 실컷 저질러 놓고 이제와서 미안하니깐 어린 여성들과 손잡고 우리들-이대남-을 희생양 삼는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검찰의 "범죄분석" 자료에서 드러난 성폭력범죄자 연령을 나누어보면 전체 24만 여명의 범죄자 중 19~30세가 약 6만 7천명으로 28%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이는 것이 팩트다(출처: 법무부 2020 성범죄 백서, p82에서 재인용). 더욱이 N번방 사건부터 몰카범까지 최근 이슈화된 많은 성범죄 사례에서 가해자의 연령은 "그들" 세대를 피해가고 있지 않다.
결국 성범죄는 "일부만의 문제"로, 가부장주의 문화 속 남성성의 의무는 "꼰대문화"로, 가부장주의 문화 속 여성성의 굴레는 "부당한 혜택"으로 외면하면서, 동시에 가부장주의 문화를 타파하고 성평등과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자를 "역차별주의자"로 몰고, 명확한 성차별을 성별 간 차이, 혹은 "순수한" 범죄로 둔갑시키는 것이 현실이다(만약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면 "성"을 "인종"으로 치환하여 비교해석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물론 적어도 경제적 이슈에서 그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사실 그들 만이 겪는 것이 아니기에, "절망적" 심리상태 그 자체를 근거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다만 거기서 발생한 분노의 대상과 방식이 너무나도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부 p57-65에서 저자가 예시로 든 사례들에서 보여지듯, 본인들이 당장 가시적으로 누리는 것이 없고 불안정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그것이 남성성의 문화를 공유하고 그 지위를 누리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타자화된 여성성의 문화에 속하는 자들이 "같은 조건에서" 그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는 증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느 인류역사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성평등을 향한 발걸음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심지어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과 그 기반이 되는 자유민주적 가치가 보장함에도-. 현재 벌어지는 백래시를 봐도,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다고 여겼던 유명-정치권-인사들이 성범죄를 저질렀음이 드러나는 처참한 현실을 봐도 그렇다. 심지어, 구조적 불평등을 겪는 집단 안에서 발생하는 이탈현상과 여러 논쟁 역시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무엇을 주문하는가?. 그는 이 책을 마무리하며 “한 명의 무결점 남성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결점이 많더라도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필요하다(p297)”고 쓴다. 이는 이중적인 선 긋기와 어설픈 선”남”의식에 맞서 “그래, 우리도 마찬가지야”와 “그래, 이건 우리의 몫이기도 해”를 깨닫게 노력하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남성해방은 진정한 여성해방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없이 중요한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가”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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