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는 건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다. 우선 다루는 주제의 스케일이 크고, 과학적이었으며 박식했다. 그리고 세상의 일들을 바라볼 때, 그 안에 빠져 들어가 이슈를 세세히 분석하는 대신, 거기서 반 걸음쯤 벗어나 관조적인 시선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읽고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 낯설게 다시 바라보기를 하듯이 (think outside the box!). 유발 하라리는 나이가 들어도 절대 꼰대는 되지 않을 듯 싶다.
이번 책 [21세기 ... 제언]에서 저자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주요 이슈들에 대해 명료한 결론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 독자들에게 각 이슈들의 상황, 문제, 질문 그리고 자신의 이해를 나열한다. 그럼 그에 대한 해답은? 그건 독자들의 몫이라고 한다
[(이 책은) 교훈의 선집이라고 하겠다. 교훈이라고 해서 단순명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독자 스스로 더 생각해 보도록 자극하고, 우리 시대의 주요 대화 중 일부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p 10)]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전작 두 편이 거대 규모의 역사서와 미래서라면, 이번 책은 21개의 에세이 모음집과 같았다. 에세이는 원래 명료하지 않다.
하지만 주제의 스케일은 전작들과 같이, 지역은 전지구적이고, 범위는 인간을 뛰어 넘는다. 여전히 double grand scale이다.
우선 저자는 현재를 바야흐로 옛 이야기는 붕괴했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 이야기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혼돈의 시대라고 본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인간 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가해질 수 있는 혁명적 기술적 변화가 우리에게 커다란 과제로 던져진 시기라고 한다.
[시장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정복하도록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역사는 예상 밖의 선회를 했고,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지금 자유주의는 곤경에 처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이 질문이 특히 통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이 지금껏 인류가 맞닥뜨려온 최대 과제를 던지는 시점에서 자유주의가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p 12-13)]
자유주의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다시 세상 곳곳에 장벽을 쳤고, 소수에 집중된 디지털 권력으로 사람들은 조만간 사회로부터 '무관 (irrelevance)'해 질지도 모를 상황이다. 즉 '우리 종(사피엔스)인 무대의 막이 내려가고 완전히 다른 극이 시작되는 (p15)' 시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 인식 위에서 저자는 우리가 지내온 익숙한 과거를 낯설게 다시 보는 그의 특기를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의미있고 실체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 인간이 만들어 낸 창작물이거나 상상적 산물에 불과하게 된다. 미국 달러, 성경, 기적과 천사, 귀신과 마녀, 종교, 국가 등등이 그러하다. 어떤 것이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면 실체가 아니라 상상이라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상상적 가치에 대한 집착이나 사회적 강요가 초래한 폐혜는 역사적으로 셀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대규모로 협력하는 인간의 능력, 개개인이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 AI를 개발하는데 투자하는만큼 인간의 의식을 증진하는데 투자를 하는 대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 우주에 대해 이미 다 만들어진 이야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에 관한 ... 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우주가 내게 의미를 주는게 아니다. '내'가 우주에 의미를 준다 (p 451)'라고 강조한다
Box 바깥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심지어 우리가 그동안 지켜온 절대가치인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한다.
[인권의 도그마는 이전 세기 동안 앙시앵 레짐, 나치, KKK에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 초인간, 사이보그, 초지능 컴퓨터를 다루기에는 맞지 않다. (p319)]
확실히 이전 책들에 비해, 저자의 주관과 개인적 경험을 더욱 대담하게 드러낸 책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마지막 21번째 제언에 '명상'편을 넣었다.
이 책의 아래 인용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흥미로운 생각 하나는, 20세기에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패배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가 근미래에는 어쩌면 새로운 기술혁명을 이용해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우리 앞에 다시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편 기본 소득 대신 보편 기본 서비스를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교통 같은 서비스를 보조...이것은 사실상 공산주의가 그리던 유토피아의 청사진이다. 노동계급 혁명을 하려던 공산주의 계획은 시대착오가 됐을지언정, 다른 수단으로 공산주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p 72)]
[실제로 AI가 중앙집중 시스템을 분산 시스템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세기에는 권위주의 정권의 주요 약점이었던 것 -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중하려 했던 시도 - 이 21세기에는 결정적인 이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p 488)]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주도한 20세기의 공산당은 중앙조직의 비효율화와 관료화로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실패했지만, 21, 22세기에는 최근의 IT와 AI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중앙시스템으로 소득과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가 재차 시도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도 주체가 더는 정치적 체제인 공산당은 아니고 이제는 AI 알고리즘이나 다른 IT 시스템이겠지만. 어쩌면 칼 맑스는 자신이 150년만 더 늦게 태어날 걸 하고 억울해 할지도. 해서 반대로, 다시 태어난 그는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에게 구호를 외치는 대신 '알고리즘으로부터 무관해진 인간들'에게 더 이상 소외당하지 말고 다같이 봉기하자고 외칠 수도 있을테다. 계급해방론자에서 인간해방론자로 변신한 맑스. 최근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기본 소득 이슈로 1세기 전의 칼 폴라니도 소환된 마당이라, 칼 맑스도 굳이 연상안될 일이 없어 한번 가볍게 상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