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원태쥔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무서운 속도로 경제성장을 해 온 중국 내에서, 이제는 대외개방과 글로벌화보다는 농촌 안으로 가야할 때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즉, 그는 중국 내 주류 계열에서 옆으로 한발 벗어난 비주류 경제학자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문제는 수십년 간 중국 중앙의 1호문건이었고, 저자는 직접 농촌으로 들어가 대안농업 등을 시도하였기에, 농촌이나 식량문제가 이슈로 거론될 때마다 언론의 관심을 받아온 스타 학자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Pros는 농촌, 중국적, 가족농, 자립, 계획 등이며
Cons는 개방, 친자본, 금융, 종속, 부채, 서구식, 글로벌화 와 같은 것이다.
저자의 비용전가론에 의하면, 모든 초기 발전에는 자본의 집중이 필요하고, 발전이 계속되면 자본의 과잉이 일어나는데, 서구의 경우에는 이 비용을 외부 식민지를 통해 해결했고,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다른 거대 개발대상국들은 잉여 농민이 도시빈민화가 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으나, 중국의 발전은 거대한 농업과 농민의 희생이 이러한 비용을 흡수(모순의 내부화)함으로써 성공적인 개발이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는 자본의 과잉이 초래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를 농촌의 개발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촌의 개발은 토지의 사유화와 거대 농업화와 같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서구식 농업이 아니라, 가족이 중심이 된 향촌규모의 전통적 농업 개발과 생태 농업이 중국에 적합하다고 말한다(성진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국가의 21세기 농업방향에 대한 의견인데, 참 독특하다.
너무 독특해 이해 안되는 부분도 여럿 있다. 가령 1950-60년대 수천만명의 죽음이 발생한 대약진 운동은 비판받는 정책으로 생각해 왔으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소련의 지원 중단으로 불가피하게 시행된 상부구조로 이것의 성공여부는 따로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p46). 심지어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시대를,
"비록 수천수만의 농민들이 국가 공업화를 위한 자본 축적의 단계에서 희생되었지만, 중국은 결국 최단시간 내에 이 단계를 뛰어넘었고,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공업의 토대를 형성했다..... 이 특수한 역사적 단계가 바로 '마오쩌둥의 시대'이다. 또는 모든 사람들이 헌신해서 천하를 공평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영웅시대'하고 일컫기도 한다" (p230)라고까지 말한다
앞으로 중국에서 농업의 발전을 통해 생태영농 등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정도의 주장이라면 저자의 논지에 어찌 이의가 있을까마는, 중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개방, 금융, 글로벌화 대신 향촌 경제 중심의 개발로 가야한다는 하나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책을 읽으며 여러 부분에서 선뜻 와닿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다. 중국은 전체 유럽을 다 합친 것만큼 큰 나라이니, 유럽에서 공업국가 독일과 농업국가 덴마크가 공존하듯이, 글로벌화와 개방을 통해 성장한 동쪽 도시의 개발과, 동쪽의 잉여를 이용한 서쪽의 향촌 개발이 양방향으로 지속공존할 수 있는게 중국일 것이라고 믿어보는 나였기에 더욱 더 그러했다. 농민 비중이 80%가 넘는 시기에 농민을 중심으로 중국은 공산혁명을 일으켰고 지금은 40%를 밑돈다. 따라서 생산에서 10%를 차지하는 농업과 40%의 인구를 구성하는 농민의 비중을 이제부터 어떻게 프로답게 다루어 나갈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아직도 농민 비중이 50% 이상인 인도나 베트남도 마찬가지로 살펴볼 주제이고. 참고로 40년 전 우리나라의 농민은 1,400만명으로 인구의 절반에 육박했는데, 지금은 25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5% 정도이다.
지난 번에 읽은 덩샤오핑 평전과 비교해볼 때
덩샤오핑의 사회주의는 글로벌 개방을 통한 시장개발에 방점을 찍은 '중국적 개방경제론자'였다면
원톄쥔의 사회주의는 자족경제식 향촌개발을 주장하는 '중국적 농촌경제론자'로 보인다.
흥미로운 관점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이 WTO에 가입하는 등 세계경제에 급격히 편입된 이후의 일들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다. 중국 내 농촌론자인 저자는 이를 기생적인 세계금융의 폐혜, 도농격차 등으로 중국에는 부정적인 위기로 보는 반면, 네오콘 등 미국의 반중 정서를 지닌 정치그룹들은 미국 내 온건파들이 중국을 세계경제에 편입시키는 실수를 함으로써 중국이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 되도록 방치했다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같은 일을 두고 내외부에서 자국 중심으로 바라보는, 아이러니한 두 개의 질투어린 우려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종종 자기 울타리 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