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들은 우주여행, 뇌과학, 냉동수면, 외계지적생명체, 사이보그 등의 미래과학적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야기는 기계적이거나 공상적이지 않았다. 대신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늘상 그렇듯이 실수를 하고 때론 비합리적이고 안타깝게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소설 속 재료는 미래이고 저기인데, 스토리는 현재이고 여기 주변이다.
소설은 크게 우주, 지구, 인간 그리고 뇌로 경계 지워지며, 소설의 시선은 그 경계 너머를 향한다.
[순례자들은...]과 [스펙트럼]은 우주에서 지구로 시선을 던지는 소설이다. [순례자들은...]은 외계행성의 마을에서 순례를 다녀오는 지역인 지구를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지구는 비개조인과 개조인으로 분리되어 지내는 갈등의 지역이다. 그래서 릴리는 그 대안으로 외계 마을을 만들고 여기서는 같은 자궁 기계에서 태어나 서로 사랑에 빠지지는 않지만 모두들 자매처럼 평화롭게 지낸다. 그런데도 마을에서 지구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소설은 다시 지구를 눈여겨본다. 올리브도 마을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간다. 그들은 지구에서 다른 존재와 사랑하고 함께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는 삶을 선택한다.
[스펙트럼]에서 희진은 우주에서 다른 행성으로 조난당하고, 그 곳에서 지적생명체를 만난다. 그들은 지구의 언어와는 달리 그림으로 소통하고 단단한 피부와 억센 힘을 가지고 있어 평범한 접촉도 희진을 멍들게 한다. 비록 평균 수명이 5년이 안되지만,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몸을 바꾸어 이어져 내려온다고 믿는다. 처음 희진이 스스로 몸을 드러내어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들은 낯선 존재를 죽이지 않고 보호한다. 희진도 지구로 귀환한 후 자신이 허언자로 몰리더라도 그들에 관한 정보를 지구인들에게 밝히지 않고 보호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에서 홀로 남겨진 주인공 안나의 시선은 지구 정거장에서 우주 머나먼 곳에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계를 바라본다. 그녀의 가족들이 있는 곳, 자신이 따라가기로 약속했으나 가지 못한 곳. 아무리 냉동수면으로 수명을 연장하며 기다려도 수년이나 걸리는 그 머나먼 우주 지점으로 가는 교통편은 이제 더이상 없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커다란 우주에서 같은 우주에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떠나지 못하고 남겨지는데. 그녀는 머나먼 슬렌포니아를 향해 초라한 우주선을 출발시킨다.
[공생가설]과 [관내분실]의 시선은 인간 개체에서 인간 몸의 일부인 뇌를 향한다. 우주에 수십조개의 항성이 있듯이, 인간은 수십조개의 세포로 구성된다. 한 인간의 몸은 우주이고, 세포는 하나의 항성이다. 어떻게 인류는 다른 포유류보다 뇌가 더 많이 발달하게 되었을까? [공생가설]에서 작가는 외계생명체가 어린 아기의 뇌에 들어가 인간의 선한 의지를 발달시켰다는 설정을 한다. 너무 황당한 설정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까 싶어서인지, 신체 안의 미토콘도리아도 별도의 DNA를 가지고 수십억년 동안 인간의 다른 세포들과 공생하지 않느냐고 한다.
[관내분실]에서는 죽은 사람의 뇌 속 시냅스 패턴체계를 스캔하여 그 사람의 마인드를 저장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뇌 속 기억이 과연 진짜 그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마인드 업로딩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지민은 분실된 엄마 김은하의 마인드 인덱스를 찾다가 몰랐던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다. 엄마는 이미 죽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지민은 업로딩된 마인드를 만나 이제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드라마 같다.
[감정의 물성]에서는 뇌 속 마인드 저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도 물질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설정한다. 사람들이 비극적인 영화나 공포영화도 자기 돈을 내고 보듯이, 감정이 물성화되면 기쁘고 사랑스러운 감정은 물론 우울하고 무서운 감정도 구매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체처럼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짓눌리듯이 피할 수 없는 감정을 겪느니, 차라리 감정물질을 손 위에 올려놓고 통제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위 세 개의 소설은 인간의 선한 의지, 기억, 감정이 외부개체화되어 다루어지는 날이오면, 한 인간의 정체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질문도 숙제로 남긴다.
김초엽의 소설들은 대체로 '왜 그러지?'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아 그렇구나 공감돼'의 결말로 끝을 맺는다. 할머니 안나가 도저히 슬렌포니아에는 도착할 수 없는 소형 우주선을 타고 정거장을 떠나도, 사람들이 부정적 감정의 물질을 구매해도, 임신 후 세계와 분리된 엄마 김은하는 왜 딸에게 집착했는지도, minority인 재경 이모가 우주선에 탑승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든 이유도, 자기를 아름다운 생물로 바라봐 준 루이의 행성에 대해 죽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희진도, 차별적 지역인 지구로 다시 돌아간 올리브도, 소설들은 '난 이제 당신을 이해할 수 있어'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각 단편들을 읽고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 책이 많은 대중들에게 읽힌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