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를 만나면서 녹녹치 않은 책이라고는 예상했지만 ’
검은책(오르한 파묵 지음, 믿음사 출판)’은 자꾸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제자리를 계속 맴돌게 했다.
긴장하지 않고 읽기 시작한 책을 4장쯤에서 힘겹게 놓았을 때 무더운 날씨 탓을 하고 싶었다.
지난한 여름 밤..
"검은책 "에 빠지기에는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하다.
책의 소재는 여느 추리소설처럼 사라진 것(사람)에 대한 추적으로 줄거리를 이어간다.
변호사 갈립은 친구이자 아내인 뤼야가 사라지자 칼럼 작가인 의붓 오빠 제랄의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제랄 역시 종적을 감춘다. 갈립은 뤼야와 제랄이 함께 숨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스탄불 거리를 헤매며 그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제랄의 칼럼에서 이들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갈립은 결국 자신이 제랄이 되어 그의 이름으로 칼럼을 써서 뤼야와 갈립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구성 때문이었을까?
문체 때문인가?
이스탄불의 낯설은 배경과 이름들 때문인가?
홀수장은 갈립이 뤼야와 제랄을 찾아헤매는 다른 이의 시각(3인칭 시점)으로 과거와 미래, 현재를 넘나드며
시공간을 흔들어놓고,
짝수장은 제랄의 칼럼으로 각 장마다 번갈아가며 결국에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찾기"위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현란한 은유와 하나의 설명을 위해서 거듭 나열된 긴 호흡의 문체를 인내하고,
터키의 훌륭한 작가들의 낯설기만한 이름들을 만나며
생경한 이스탄불 거리를 따라가다보면 갈립과 제랄의 헤매임처럼
나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되어 나를 찾기 위한 복잡한 여정이 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갈 수록 눈은 책을 따르지만 글자는 뇌까지 이르지않고 혼돈의 늪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책은 명쾌하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낱글자마저 곤혹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내를 거듭하고 책을 들어 1권 중반을 넘어설 즈음 낯설음에 적응하고 이스탄불의 역사적 비애를 공감하며
갈립의 "나의 정체성을 찾는" 추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 또한 나로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동경하고 다른 이가 되고 싶어한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인 터키는 역사적으로 아시아, 유럽, 이슬람이 교차된 독특한 터키의 문화와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갈립이 지나치는 이스탄불 곳곳에서는 본래의 터키는 지양되고 스스로 서양의 그것이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갈립 또한 <나>이지만 제랄을 동경하고 그가 되고 싶어한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 싶은 것은 희망보다 절망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2권을 끝맺기 전에 쓴 글인지라 서평을 쓴다는 것이 무리가 있겠지만
나는 책의 끝을 알기가 주저된다.
그 끝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갈립이 있다면,
재미로 읽고 감동을 받는 여느 책들과 달리
고민하고 내 자신을 인내하고 견딘 며칠의 수고가 그저 고통으로 남을 수 있다.
그래도 끝을 읽게하는 오르한 파묵의 매력은 2권의 끝을 맞으리라 확신한다.
이 지루한 서평을 읽은 분들은 자신이 인내할 수 있다면 <검은책> 1권의 반을
꼭 넘겨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