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
까리 2026/10/1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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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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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39
예술이 내 인생을 강타한 적 있던가? 책이나 음악, 미술, 퍼포먼스 같은 예술을 향유하면서 이전과는 조금씩 달라진 나를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예술이 개인의 인생관과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소설이라고 유념하고 읽지 않으면 깜빡 속기 쉽다. 실존하는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를 우연히 보게 된 주인공은 소아 정형외과 의사로 예술에 무관심했던 평범한 중년 남자다. 어느 정도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겠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생생해서 길고 긴 한 편의 일기처럼 느껴졌다.
신체적, 정신적 한계에 늘 도전하며 관객과 공연자의 위치를 허물고,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와 고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관계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하게 해주는 마리나의 행위 예술은 말그대로 주인공의 온 신경을 강타한다. 시기상으로 코로나 팬데믹과 겹치면서 주인공 내부의 휘몰아치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오롯이 느껴지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며 마침내 평온에 이르는 과정에 나도 홀랑 빠져들었다.
그저 주어진 대로만 살기 쉽다. 감정이 끼어들 틈 없이 무신경하게. 우리는 정말 그렇게만 살아도 되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정답 없는 이 세상에 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 인생의 본질에 더 깊이 다가가려 하는 탐구적인 소설이었다.
\ 진실에 도달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위험과 시행착오, 실패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니 우리 앞에 고통스러운 시련이 기다리더라도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대담함과 호기심으로 꿋꿋이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 타성과 편안, 확신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p.211)
내가 알던 작은 세상에 틈이 생기고 균열이 일어나 끝끝내 부서지고 마는 상황은 어쩌면 고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틈만큼 분명 나는 조금 넓어지고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가진다는 건 지금 이 현실을 버티고 이겨낼 힘이 되는 것도 같다. 주고, 주의를 기울이고, 손을 내미는 일을(p.132) 포기하지 말아야지. 도망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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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우리는 이 '먼저 가세요'라는 한마디로 문명을 세울 수도 있을 겁니다.
🔖132. 줄곧 방관했다. 내 책임 밖의 일이었다. 몇 달째 내 집 근처에 놀러 앉은 이름도 모르는 노숙자를 걱정하기에는 충분히 많은 세금을 냈다. 얼굴 없는 관료제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챙겨주는 국가의 보살핌이 내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의무를 대신해 버렸다. 공적 연대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기에 타인을 돌본다는 것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지만 나뿐만이 아닌 많은 시민들이 나쁜 버릇을 들였다) 서서히, 바로 그 시스템이 나를 무신경하고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인간답게 반응하는 법도, 동정심도, 배려도 잊어버렸다. 타인의 불행과 내 행복의 양립이 가능했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게 권장되기도 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불행을 책임질 수는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 형제애를,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될 그 의무를 포기했을까? 주고, 주의를 기울이고, 손을 내미는 일 말이다.
🔖145. 병이 시작된 이후로, 내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는 그 무엇도 안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흔들리는 것은 땅뿐만이 아니라 내 삶 전체였다. 나의 확신들도 모두 무너져 내렸다. 이젠 의심이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마주했다. 내가 사라진다 해도 그 누구도 나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모든 나를 사랑했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하면 행복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
🔖211. 자신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얼굴의 반을 가리면서 스스로를 숨긴 나머지, 나는 나로부터 도망치고 말았다. 존재에 대한 불확신으로, 삶의 본질은 모험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살았다.
#에릭포토리노 #나를지켜줘아니면나를죽여줘 #레모 @ed_lesm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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