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황홀한 순간
까리 2025/02/0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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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황홀한 순간
-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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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 2025-02-07
: 2,560
하루만에 완독. 흡입력 넘치는 소설!!
목차는 매 월별로 두 여성의 시선으로 번갈아 자리한다. 김하임과 이무영. 두 여자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1월의 김하임과 1월의 이무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11월 이후는 이무영 이름의 목차 없이 김하임의 11월, 12월만 있는 게 처음부터 왠지 긴장이 되었다.
긴장했던 것도 잠시 김하임의 이야기는 산뜻하고 재치발랄 코믹 그 자체였다. 할아버지를 도와 연향역 매점을 맡아 일하게 된 김하임은 전남자 친구를 잊을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늘 티격태격하지만 곁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소꿉친구 성기와의 케미도 귀엽고.
긴장을 놓던 순간 마주한 1월의 이무영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부모의 도움으로 오갈 데 없던 희태가 집에 들어온 이후 산산이 조각난 무영의 삶. 희태는 완벽에 가까운 연기로 모두를 속이고 고등학생 신분이던 무영을 겁탈해 임신하게 만들었고 무영은 부모의 충격을 염려해 모든 걸 버리고 떠나 딸을 낳고 숨어 산다. 아직 딸 민아가 어렸던 시절 자신들을 찾아낸 희태를 피하지 못한 채 십 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온 무영의 1월부터 가슴 절절하게 아려왔다.
하임은 역무원 지완에게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싹틔우게 되고 지완도 하임에게 점차 마음을 여는 풋풋한 모습과 매번 극강으로 대비되는 무영의 처절한 삶의 모습이 어우러져 불행이란 말로도 부족한 지옥 그 자체를 생생히 보여준다. 여전히 지 버릇 개 못 준 쓰레기 희태는 무영과 민아를 처참히 괴롭히고 딸을 지키기 위한 무영은 조용히 모든 걸 참아낸다. 생계를 잇기 위해 연향으로 오게 된 무영과 연향에서 계속 머물러 있던 하임의 연결고리는 중반부부터 풀어지기 시작한다. 하임과 무영의 거의 황홀한 순간은 과연 오긴 오는 걸까.
직접 쓰면서도 고통스러웠다는 작가의 말을 깊이 공감한다. 읽으며 괴롭고 아팠지만 피할 수도 없었던 이유가 문장들이 탄탄하고 안정적이었고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해서 넋을 놓고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냥 홀려 버렸다. 설득하게 만드는 필력에 감탄했다. 하임이 막무가내로 무지하지 않아서 좋았고 무영이 끝끝내 강단이 있어 좋았다. 내 주변에도 아마 많은 무영과 하임이가 있겠지. 나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시대가 머지않았길(p.285)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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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나는 지완이 놓고 간 육백 원을 손에 꼭 쥐고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스무 발자국쯤 되는 공간을 종이접기 하듯 살풋 접어 답삭 붙여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89. 가장 좋은 걸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매대에 쌓인 싸구려 사과 중 가장 예쁜 걸 골라도 좋고, 읽던 책 중 가장 낡아도 괜찮았다. 좋아서 준다는 그 마음 하나면 값이 비싸졌다.
🔖121. 음지에 뿌리류 내리고, 양지를 향해 가지를 뻗어가는 식믤처럼 희태의 친절에선 언제나 퀴퀴한 늪지의 개흙 냄새가 풍겼다.
🔖178. 마데카솔로는 어림도 없는 절망의 병, 그게 불행이다. 나의 불행이 지완의 평탄한 삶을 감염시켜 농양을 만들고 부스럼을 일으킬까 두려웠다. 그걸 알면서도 지완을 떨칠 수 없는 건, 죽음 앞에 이기적으로 돌변하는 인간의 악마적 본성일지 몰랐다. 미안한 사람이 또 한 명 생겨버리고 말았다.
🔖196. 남과 다르다는 건 튀어나온 못처럼 뽑아내고싶거나 박아 넣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다.
🔖198. 가요, 천 길 낭떠러지든 해변 오두막이든 세상 끝이든.
🔖229. 아무래도 낭떠러지 같다고, 그래서 혼자 간다고. 쫓아오면 뛰어내리겠다고 전해.
#강지영 #거의황홀한순간 #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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