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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리님의 서재
  • 허밍
  • 최정원
  • 14,400원 (10%800)
  • 2025-01-10
  • : 1,640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서울의 수백만 명이 나무로 변한 세상.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빨리 대피해 서울을 막을 큰 방벽을 세워 대책을 연구했다. 9년이 흐른 지금, 서울 상공에 '우산'이라는 광역 방역 시스템인 기구를 설치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우산'을 실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력을 서울로 투입한다.

주인공 여운은 서울에서 엄마를 잃고 이모와 도망쳐 살고 있으면서 늘 엄마의 생사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큰돈을 벌어 방벽 근처 바이러스의 위험 상황에서 일하는 이모를 편히 살게 할 목적으로 서울에 투입하기로 한다. 여운과 함께 파견된 R은 인공지능 로봇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며 흔들림이 없어 여운을 완벽히 보필한다. 완전 면역을 가진 채 서울에서 고립됐지만 살아 남아 나무들을(가족과 친구들을) 돌보던 정인을 만나게 되고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마음을 주고 의지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은 쏟아져 내리는 질문들 속에 파묻혔던 시간들이었다. 나무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치며 투입된 사람을 공격하기도 해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느껴야 했던 막막함과 두려움.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린 코로나19를 겪었고 그때의 상황과 겹쳐 보이는 장면들이 있었다. 바이러스, 감염, 팬데믹. 여러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그저 운 좋게 재난을 피한 사람들의 대립되는 마음이 씁쓸했다. 진정한 애도는 어떻게, 얼마나 표현해야 하는 건지, 허울뿐인 위로와 진심은 구별될 수 있는지 한참을 고민하게 했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기필고 두드러지게 나뉘고야마는 강자와 약자. 언제나 무시되기 쉬운 부류는 소수였다. 다수의 '합리'라는 말로 얼마나 많은 소수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아 왔는지도 떠올려 본다.

"수가 적으면 목소리가 작죠. 목소리가 작으면, 못 들은 척할 수 있지. 그런 멍청한 짓이 통하는 것도 지금의 감염자 수가 전체 인구수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합리화를 거친 끝에 모두 지워 버리기로 작정할 수 있을 만큼. 함께 감당할 다른 방법을 찾기보다, 한시라도 빨리 싫은 것을 눈앞에서 삭제하고 싶어 하는 본성에 충실할 수 있을 만큼." (p.296)

함께 감당하고 이겨내는 마음을 품어본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비춰지는 인간의 모습은 약간은 비합리적이고 어리석기도 하며 대책없는 무모함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기에 인공지능이 절대 가지지 못할, 이해하지도 못할 인간의 고유함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합리적이고 공정함이라 함은 어떤 입장에서는 매우 비합리적이며 불공정한 상태일 수도 있음을 항상 헤아려야 할 것 같다. 살짝 개연성이 낮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한 권으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독자를 생각의 늪에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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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구가 드디어 인간을 치워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스스로 백신 주사를 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74. 비록 영원히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밀 고통 없이 평온하길 바랐던 가족이, 저런 모습으로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걸 보게 된다면...... 누구든,

🔖136. 이별은 각오한다고 무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48. 웃는 이유요? 밝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예요. 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거든요. 잘 이겨 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예요. 그냥...... 평범하게, 똑같은 사람으로 봐 달라는 아부 같은 거예요. 동정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243. 더 자세히 설명하라면, 당신의 그 비합리성이 너무나 흥미로웠다고, 그 순간부터 인간의 모든 삶에서 그 부분부터 찾고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그렇게 배워 나가다 보니 그 흔해 빠진 어리석음과 대책 없음이 인간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아주 마음에 들어 버렸다고 말해 줄 수 있다.

#최정원 #허밍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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