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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리님의 서재
  • 부적격자의 차트
  • 연여름
  • 13,500원 (10%750)
  • 2024-12-25
  • : 1,350
2692년, 다섯 번의 세계 대전이 지나고 거의 100프로 치사율을 가진 리누트 바이러스가 횡행해 말 그대로 인류 멸종을 앞두고 있는 어떤 미래의 이야기.

없어진 줄 알았던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은 함께 생존을 모색한다. 인공지능 모세는 그저 중재자의 역할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인간들은 실무자가 되어 생존을 이어간다.

/ 이들은 죽음을 부르짖는 동시에 생존을 갈망했다. 두무리로 갈라진 채에도 그랬지만 한 사람의 내부에서도 두 의지가 충돌했다. 죽음과 안식을 동일시하기도 하며, 생존을 두려워하면서도 희망했다. 인공지능에겐 모순의 연쇄였다. (p.24)

인공지능이 생각한 인간의 이런 모순적인 면은 생존에 치명적인 위험이라 판단하고 모순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철저히 제한한다.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으로 중요했던 인간들 역시 중재자 모세를 따르며 잃어도 상관없을 많은 것들을 버리는 삶을 이어간다.

상상은 그 자체로 허구일 테니 금지되고, 꿈을 꾸는 것조차 병증으로 치부되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며, 여러 감정은 오류로 판단되어 결격 사유가 되는 곳. 결점이 7번 누적되면 부적격 판단으로 영원히 소거되는 곳이 배경이다. 9세대까지 이어지던 생존의 찰나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세인은 레드를 만나 생존 가능성이 없는 돔 밖에서 사람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40세를 코앞에 둔 세인의 기록은 무결점. 결점 하나 쌓지 않고 완벽한 실무를 성실하게 맡던 세인의 감정은 흔들린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 못한 비밀을 안고 있던 세인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합리와 실용에 대해서 생각했다. 중재도시에서의 합리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그저 생존만을 위한 삶이다.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실패해도 매사에 선택하며, 꿈과 사랑을 나누고, 호기심을 가지고 나아가는 삶을 원하는 인간은 불합리하고 부적격자로 여겨진다. 밑줄 그어야 했던 문장이 넘쳐났고 한 단어, 한 문장 꼼꼼하게 읽고 싶고, 읽어야만 했던 소설이었다. 생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존만을 위한 삶을 읽고 느껴본 소감은 매우 착잡하고 괴로웠다. 이야기가 없고 호기심과 희망이 없는 세상이라니 꿈에서조차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편리함과 실용성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지금의 순간에도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무조건 좋은 것, 옳은 것이라는 판단을 유예하게 된다. 내 인생은 군더더기가 잔뜩 낀 모순 덩어리일지라도 꿈꾸고 희망하고 소통하며 부딪히고 흔들려도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인생이고 싶다. 여운이 길어 책을 다 읽고 3일 동안 다른 책을 손에 들지 못했다. 쉽사리 이 책 저 책 이동하지 못하는 게 내 단점일 수 있지만 계속 곱씹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는 것이니 당분간 이 기분을 즐기고 싶다❣️

+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 나에게 완전 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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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생명을 연장해나갈 것인가, 예정된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낼 것인가. 무엇이 더 인간적인가.

🔖154. 돔이 허락한 둥근 경계가 없는, 시작도 끝도 없는 검은 밤. 검디검은, 모두가 꿈을 꾸어도 좋을 시간이. 그 속으로 걸어 나갈 시간이었다. 허구이자 곧 진실인 그곳으로.

🔖173. 인생의 반환점이 아닐까 싶은 해에 예전엔 인류의 기대 수명이 어땠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세계 평균이 40세에 못 미쳤다는 결과를 보았다. 100년 전이었다면 나는 이미 고인일 가능성이 컸다. 어쩐지 그 순간 마지막 장사를 마치고 마감까지 끝낸 다음 어두컴컴한 가게에 홀로 앉아 있는 주인장이 된 기분이 들었다. 자, 오늘로 전부 끝. 내일은 없음. 그리고 그 주인장은 이런 질문을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중요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이 시점에도 변함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연여름 #부적격자의차트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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