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온도
까리 2024/12/1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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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의 온도
- 정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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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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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준 책. 너무도 빠르고 간편해진 서로의 안부를 묻는 행위가, 어쩌면 편해진 만큼의 여운을 빼앗은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펜을 들고 고뇌하며 고르고 고른 단어들을 써내려 가고 곱게 담은 그 마음을 우편으로 부쳐 며칠에 걸려 소식을 전할 수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스마트한 세상에서도, 여기저기 넘치는 안부 인사에도 어쩐지 외로움은 더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작가는 주변의 모든 것에 따스한 시선을 품고 그 시선을 그저 흘려 보내지 않고 품고 보듬어서 그 마음을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라 느껴진다. 시인의 시선엔 이렇게 온기가 가득한 걸까.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느끼기 쉬운 사람들과 장소, 물건들에까지 다정한 눈길을 주는 일은 쉬워 보이는 한편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치는 순간들이 매번 오더라도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게서 받는 애정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낸다. 가끔 못나고 추레한 내 모습일지라도 온전히 나이기 때문에, 나로 존재하는 모든 시간들에 순순히 감사하게 될 그날을 위해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을 배워간다.
다정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왜 그럴까 고민해보게 되는 것만으로 가치있는 책이다. 조금 더 다정해지고 싶다. 나를 내세우고 남들을 짓눌러 우위에 서는 강인함이 아니라 타인을 부드럽게 포용하고 녹아들게 하는 힘은 진정 다정함에 있는 것이리라. 내 온도를 가늠해보며 아직은 터무니 없는 미적지근함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따뜻해질 나를 상상하며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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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떤 사건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끔 반드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사물이나 사람이나 지워지지 않는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나에겐 더 이상하게 다가온다. 삶은 유리컵을 엎지르고 싶지 않아도 엎지르게 되는 일처럼 통제할 수 없으니.
🔖139. 나는 일곱 번째 문진을 구매한 뒤로는 새로운 문진을 들이지는 않았다. 마음이 식었다기보다는 어떤 사물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려는 태도가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미 가진 사물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아껴주는 방향으로 중심을 옮겨가고 싶었다.
🔖166. 네가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것 같았어. 앞으로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알고 있는 거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지의 방향만큼은.
🔖185. 벚꽃이 언제 피고 지는지, 어떻게 날씨가 변하고 있는지, 그 영향으로 어떤 식물이 더는 씨앗을 품지 않는지 잘 지켜보지 않는다면 지켜낼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나의 일상이 그 존재들 덕택에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야 그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테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설 테니 말이다.
🔖270. 어찌 되었든 나에겐 이날밖에 없다는 것. 내가 맞이한 오늘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고 오로지 단 하루로 존재할 뿐이라는 것. 그 단상을 곱씹다가 어떤 페이지도 찢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 삶이 추하게 느껴지는 날에 대해 썼더라도, 숨기고 싶은 감정들이 맨얼굴처럼 드러나도 없애거나 버리지 말자고.
#정다연 #다정의온도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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