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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리님의 서재
  • 취중 마음 농도
  • 설재인 외
  • 17,100원 (10%950)
  • 2024-09-30
  • : 175
책을 읽기 시작하며 생각했었다. 나는 왜 술을 좋아할까? 아마 술 좋아하는 두 작가의 술 냄새 진하게 나는 편지글을 읽다 보면 나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갖다 붙이는 대로 이유가 만들어지겠지만 여전히 난 술이 '그냥' 좋은 걸. 다른 이유를 붙이기 힘들다.

여기 서로 너무너무(강조!) 다른 두 여자 작가의 술 이야기. 공통점은 둘 다 술을 좋아한다는 것뿐, 주종도 술을 마시는 스타일도 정말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며 취기가 도는 상태에서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책이냐. 며칠을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손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 책을 읽었다.

소주를 제일 좋아하고 혼자가 편한 89년생인(왠지 이 글들에선 그들의 나이도 중요한 차이점으로 다가온다) 설재인 작가와 위스키를 좋아하고 술의 맛과 멋을 제대로 느끼며 관계에 집중하는 01년생 이하진 작가.

술을 마시며 쓰는 글이라 그런지 왠지 마음 저 밑바닥에 묵혀둔 이야기까지 술술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그리고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듣는다. 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지만 술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진하고 깊은 기억의 조각들까지 떠올라 자기주장을 펼친다. 즐겁게 시작했다가 묵직한 이야기와 철학적인 인생관을 들은 기분이라 마음이 마냥 가볍진 않지만 그게 책이 주는 행복한 무게감인 것 같다. 두 작가의 환경이나 가치관을 주고 받는 글에 공감백배 밑줄을 얼마나 그어댔는지 모른다.

술에 대한 사랑을 시(詩)적으로 나눈 모습이 인상깊었다. 술의 입장이 되어 나를 돌아보는 상황이라니 이 재미있는 상상을 나는 왜 한 번도 못 했을까.

"오 씨는 어디 가지 않아요. 수단이 되어도 슬퍼하지 않고 언제나 꾸준한 분량의 기쁨만을 주려 노력하는 오 씨."(p.84)

오 씨는 알코올의 화학식 C2H5OH를 편히 읽으려 뒷글자 'OH'만 따서 '오 씨'라고 부르겠다는 설재인 작가의 글을 읽고 키득거렸다. 오 씨라고 부르고 보니 정말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는 든든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른말을 해주는 이가 충신이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이가 간신이라면 오 씨는 어쩌면 간신에 가깝겠지만 우리가 술을 멀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술이 우리를 사로잡을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행복하기만 한 일은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일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 우리는 고통의 총량보단 행복의 총량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거죠.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그나마 우리를 '살아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이 주는 낙관의 어감을 좋아합니다. 백해무익한 술의 각종 해로움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음주를 택하는 저의 모습에 낙관을 붙이긴 뭐하다 생각은 하지만요. 그래도 즐겁잖아요? 그럼 된 거죠."(p.318)

숨만 편히 쉬는 것도 쉽지 않은 현대사회에서는 이하진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고통에 집중하기보다 행복에 더 집중해야 한다. 우리를 살아낼 수 있게 만드는 소소한 것들에 집중하기. 나 역시 '즐거우면 됐다'라는 마음에 백 프로 찬성할 수도 없고 즐겁지 않은 일도 해야 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내 기쁜 감정을 조금 더 플러스 시켜주는 '오 씨'와 함께라면 살짝 밋밋한 순간도 화사해보이기도 하니까. 의존적이지 않은 건강한 관계에서라는 전제하에 즐겁게 즐겨도 좋지 않을까.

나는 정말 임팩트 있게, 짧고 굵은 리뷰를 쓰고 싶은데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어진다.설재인 작가와 이하진 작가 둘 다 다른 색감으로 서로 다른 향기로 각자의 매력을 철철 떨어뜨려 놓고 갔다. 혼술도 좋고 함께하는 술자리도 좋고 낮술 밤술 다 좋아하는 나는, 이제 나이를 앞세워 뒷날이 많이 힘들지 않을 만큼만 즐기려 노력한다. 건강하게 오래 술 마시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도 한다. 많이 마시고 적게 마시고를 떠나 술을 좋아하는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덧. 나는 주종 안 가리고 술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최애는 소주..... 제일 친근하고 가깝고 부담없는 친구랄까.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며 내 꼭 마셔보리라 다짐한 위스키 '글렌 모렌지 시그넷' !!!! 조만간(?) 마시고 댓글로 후기 달아야지 캬캬. 역시 책과 술은 항상 내 좁은 세계를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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