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고통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일은 가능한가” 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던 책.
최근 방영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비롯해서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된 존엄사.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존엄사, 안락사라는 측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3명의 의사가 조력임종이라는 죽음을 놓고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보아야하는 지를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시작은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다. 단순히 어떤 사례들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다투어야할 논제가 아니라 그것에 이르기 까지의 우리사회의 생에 대한 질/ 돌봄 등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으며 반드시 검토해야할 쟁점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의사조력임종을 채택한 국가들이 마주한 난제,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우리 문화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까지를 읽고 있다보면 정말 내가 선택한 죽음이라는 결과를 위해 단순히 생각했던 문제가 타인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결코 가벼운 논제가 아님을 알게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선택 역시, 단순히 호흡기 연결을 종료하고, 심페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임종에 다다를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즉 임종기에 들어선 상태가 아니라면 연명의료중단 역시 자기선택 사항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결정권은 연명의료중단 뿐인데, 그렇다면 왜 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부터가 논의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예를 들어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고가의 신약이 필요한 암환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해당 환자는 가족에 대한 피해, 어려운 진료환경, 간병, 고가의 치료비 등은 환자에게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순수한 동의”라는 측면에서 성립할 수 있을까?
결국 죽음이라는 한 인간의 마지막 결정에 대해 오롯한 자신의 결정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가 임종에 이르기 전까지, 소위 조력임종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리기 전까지 우리는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저자는 이 대복에서 '말기 돌봄/완화 의료'의 화두를 다시 던진다. 호스피스. “죽음”과 연결지은 치료가 아니라, 끝까지 내가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평안한 삶을 위한 치료의 측면에서 호스피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호스피스가 대안이 될 수 있을만큼 우리 사회에 보편적 접근성이 있는지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10년전이긴 했으나 말기 암이셨던 할머니를 호스피스로 모시려했으나 서울 내에서는 3-4일 내 사망하지 않으면 퇴원해야 한다고 들었고, 경기권에서는 입원은 가능했으나 우리 가족의 접근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위치였기에 포기해야만 했다. 수도권조차 이러할진데, 지방의 현실은 더 열악하지 않을까?
결국 돌봄에 대한 의료의 공백은 가장 경제적/신체적 취약계층에게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사조력임종이라는 것이 제도화 되었을 때 모두에게 이 제도는 정말 안전하게 이용될 수 있을까?!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노인 자살 1위가 대한민국인데..
’임종기’의 환자뿐 아니라 만성질환/난치병의 측면에서 본다면 운동신경장애/만성폐질환/심부전등등 임종기는 아니나 끊임없이 누군가의 손길과 치료가 평생에 걸쳐 필요한 질환을 가진 사람들 역시 돌봄이나 완화의료의 접근성을 놓고 본다면 너무나 낮은 수준의 현실 속에 놓여있다.
이 책은 이밖에도 굉장히 폭넓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 봐야할 점을 짚고 있다. 자살과 의사조력임종의 차이, 그리고 의사조력임종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가지 현상 등. 그리고 우리가 TV에서자주 보는 스위스의 이그니타스라는 단체 등. 그리고 의사로써 가지는 딜레마. 인간생명의 존중측면에서 행했던 의료행위에서 “죽음”을 두고 내려야 하는 행위는 결국 환자에게 의사에게 가지는 절대적 믿음의 훼손 측면에서는 어떤 의미가 될지.
그럼에도 여전히 조력임종에 대해 합법화 되지 않은 나라에서 자신의 환자가 가지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내린 몇몇의 의사와 그들의 양심고백등으로 재판에 대한 판결은 집행유예로 결론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을 지극히 의사나 환자/환자가족 의 개인적 이슈로만 언제나 묶어둘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더 음성화 될 때 나타나는 문제 역시 존재함을 저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비류잉 작가의 “단식 존엄사”도 생각이 났고, 또다른 의미로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한사람의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라는 사실이 새삼 무섭다.
깨끗한 죽음. 이것은 깨끗한 삶이라는 말처럼 어려운 일임을.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엔딩까지 이르는 삶에 대해 개인의 문제이면서도 사회의 문제임을 다시 알게 하는 책이다.
그렇기에 참 어렵고 아팠다.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더욱 남은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끝내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 조력임종을 택했을 누군가의 고통을 너무 뒤늦게서야 알았다. 그 깊은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 채, 그동안 그저 쉽게 '죽을 권리'라는 측면에서 조력임종 도입을 찬성했던 나의 한없는 가벼움이 부끄러워졌다.
진짜 추천.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