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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ddus님의 서재
  • 혼모노
  • 성해나
  • 16,200원 (10%900)
  • 2025-03-28
  • : 321,889

책의 표제작인 ‘혼모노’는 알고 있던 작품이다. 젊은 작가상에서 이효석 문학상에서 이미 만났었다. 제목도 그러했고 내용도 꽤나 강렬해서 인상에 깊게 남았었다. ‘잔짜‘라는 것을 부여하는 기준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했으니까. 타인의 인정을 통해 부여되는 진짜와 내가 믿는 진짜의 기준이 다르다면, 둘 중 하나는 오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무당이라는 직업이라면, 신할머니라는 피상의 존재에서 부여되는 조건이라면. 진짜의 기준은 누가 부여할 수 있는가?!


혼모노에 실린 성해나 작가님의 소설은 어디쯤 불편한 부분을 콕 하고 건드리는 것 같았다. ’길티플레저’ 김곤이라는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불편함. 그 모임안에서 느껴지는 어쩌면 계급간의 모임. 추문일지 사실일지를 판단하지 않은채 이익과 즐거움 그 어디쯤을 두고 모인 사람들의 실체는 진실에 대한 것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삶 속에서 소소하게 외면하는 무엇에 대해 돌려까는 느낌이랄까. 나의 이익 또는 나의 이익과 맞물릴때 우리가 무엇을 외면하는가를 말이다. ‘길티플레저‘라는 제목이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구의 집”나는 이 집을 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 건축물에 대한 책을 보았었다. 그 건축물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설계 되었는지를 읽으며 인간이 어떻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작품은 그 건축물을 지은 가상의 인물 구보승과 그의 스승 여재화의  이야기이다. 책의 뒤에 평론가님도 언급했듯 이 작품은 읽는 내내 한나 아렌트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을 위한 건축‘을 하고 싶었던 평범하지만 꼼꼼했던 한 인물이 ‘인간’이라는 중심을 누구냐를 생각하지 않았을 때, 그 건축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 지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었다. 끔찍해서 자신의 이름을 실을 수 없었던 스승 역시 어쩌면 수동적 방관자여다. 나는 이 작품과 묘하게 연결되는 것이 ’잉태기‘라는 작품이였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사고하지 않고 맹목적인 시선, 감정이 자신을 또 다른 이를 어떻게 좀먹는지를 보여주는 느낌이 유사해서 였을까. 시아버지와 자신의 딸을 두고 벌이는 묘한 경쟁심은 딸을 위해 무엇이 좋은지를 가늠할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른다. 딸의 인생을 두고. 결국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맹목적인 투쟁만 남은 사태.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에 망가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책 혼모노에 실린 이야기들이 내게는 조금씩 다 까끌거렸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불편감. 불합리를 스스로 합리화하는 행동들. 이 책의 인물들이 보이는 극단의 모습이 내게도 투영되었기 때문일까.
재밌다. 박정민 배우님의 유명한 추천사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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