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흑인여성 노벨상 수상자의 최초의 작품. “가장 파란 눈” 이 책을 다른 책에서 소개하는 것을 읽고서, 토니모리슨의 “빌러비드“를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읽었었는지가 기억이 났다. 이 책 역시 그렇겠지. 싶었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1960년대 흑인인권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지만, 2025년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Black Lives Matter” 라는구호와 함께.
흑인소녀 페콜라는 아버지 촐리가 음주 방화로 감옥에 간 중 잠시 다른 흑인가정에 맡겨진다. 그 가정 역시 열악하다. 가난했고, 주변에는 소위 사회 가장 바깥계급으로써 일하는 노동자 집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페콜라는 그곳에서 자신이 살았던 집과 다른 안락함을 느낀다.
사회적 시선, 온전치 못한 가정에서 받은 폭력으로 페콜라는 스스로를 못생기고 추하게 여긴다. 이 책에서 페콜라는 주인공이면서도, 페콜라 스스로의 말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소비되는지만 보일 뿐. 주변에 어른이라고는 자신을 추하다 말하는 이들 뿐이다. 그래서 였을까. 그녀는 “푸른 눈”을 가지고자 한다. 아름다운 백인들의 전유물. 그런 눈을 가진다면 다른 이들이 자신을 달리봐주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으며.
저자 토니 모리슨은 친구가 자신은 ”푸른 눈“이 가지고 싶다는 말을 듣고서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오로지 백인에게 맞춰져 있던 시절.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못생기고 더럽다는 이미지를 가져야했단 그녀에게 이 책은 필연적이였을까. 차마 글로는 적지 못한 일을 당하고도 페콜라를 둘러싼 세간의 날카로운 시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그녀에게 향한다. 그녀가 가장 약한 사람이였으니까.
몇년전에 유행했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에 대한 비판중 하나가 어떻게 그 모든 사건이 김지영에게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였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보기보다 흔하다. 강도의 차이일 뿐. 이 책의 페콜라 역시 그 모든 일이 어떻게 페콜라에게 모두 일어날 수 있느냐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 토니모리슨은
”페콜라의 삶이 비록 남다르지만 그 취약성의 몇몇 면모는 모든 여자아이 안에 자리잡고 있다“ 라고 말했다.
흑인, 아이, 그것도 여자. 가장 최약층에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가진 욕망. 그것이 ”푸른 눈“을 갖는 것이라는것에 감히 어떻게 고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 토니모리슨이 친구의 그 말에 이상했지만 쓸 수 밖에 없었던 이 작품은 아마도 저자 스스로가 그녀의 바램이 왜 생겨났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이였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책 속의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가장 숨막히게 했다. 행복한 일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 뿐. 스스로는 물론 같은 인종끼리도 경멸만 남은 공동체.
“페콜라가 자기도 그들처럼 살겠다고 선언했다 하더라도, 놀란다든지 말리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p.78 - 이 글의 앞뒤 맥락이 이 공동체의 바닥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부모조차 딸을 추하게 여기고, 아버지 촐라의 말도안되는 가해행위에 대한 토악질 나는 변명을 읽고 있자면 페콜라의 ”푸룬 눈“은 그녀가 그곳을 탈출 할 수 있는 오롯한 희망이였을까. 그녀의 희망에 감히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싶었다.
내게는 빌러비드도 그랬지만 이 책 역시 매끄럽게 읽히는 책은 아니였다. 난해하다기보다 내가 당사자로써 갖는 이해의 폭이 좁달까.
인종차별에 대해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바에서 오는 차이..?! 라고 해야할지. 이 책은 지식으로 알았던 것을 좀더 사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이다. 빌러비드가 그랬던것처럼. 이야기가 주는 힘이겠지.
끔직하지만, 우리가 사람으로써 사람을 대해야하는 가장 근본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치게 하는 책.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