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작가님의 파과를 읽고 절창이 궁금해졌다. 늙은 킬러. 절창 : 베인상처. 어떤 연관이 있을까. 결국 이 책도 사랑이였다. 신비로운 아가씨와 그녀 바라보는 남자. 왜였을까. 이유는 알지 못한채 끝맺음이 나는 책.
제목 절창이 왜였는지는 처음부터 등장한다.
절창 : 베인 상처를 통해 타인의 기억을 읽는 아가씨. 그런 그녀에게 오언이 찾아왔다. 이 책은 아가씨의 시점이 아니다.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는 독서선생의 3인칭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닌 제 3의 인물인 선생이 바라보는 아가씨와 오언은 책의 소재와도 맞닿아 있다. 고아. 아닌 버려진 아가씨를 데리고 온 것은 오언이다. 그에게 갖힌 듯 자유로운 듯한 아가씨는 오언의 요구에 타인의 베인 상처를 통해 기억을 읽고 말한다.
오로지 그것 뿐.
매일 반복되지도 않지만 때로는 자주.
그녀는 그곳을 탈출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의지하고자했던 이들이 오언으로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아가씨는 결국 도망치지 못했다. 그녀로 인한 죽음이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누군가 다치지 않게 하기위해.
독서선생의 입으로 들려주는 아가씨와 오언의 관계는 흐릿하다. 어느 것도 시원한 것이 없다. 독서선생인 나는 실제 아가씨에게도, 첫 만남에서 타인을 아무 죄책감없이 베는 오언에게도 그 무엇도 묻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말을 들을 뿐이다
그래서 끝내 '아가씨'의 감정도 '오언'의 감정도 그저 짐작만 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사실인듯 사실 같지 않는 느낌이지만, 마치..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것이 없는 다큐를 보는 기분이랄까. 결국 그들을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독서 선생 역시 그 이야기의 한 부분임을 결말에서야 알았지만, 그 사실이 모든 것을 선명하게 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것이 이야기의 숙명이라 말하는 듯하다는" 소개글을 읽으면서도, 보통의 이야기는 흩어진 퍼즐을 쥐고 있는 독자들에게 마지막에는 맞춰진 그림을 보여주는데, 끝내 이 책은 우리에게 흩어진 퍼즐의 단면만을 보게 했다.
마치 그것이 우리가 타인을 결코 100%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듯이. 결국 타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을 통해 그저 납득할 뿐이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걸까.
"아가씨 앞에 던져진 것들은 인격이 아니라 상처라는 매개였을 뿐이고, 그걸 통해 아가씨가 읽어낸 것들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한 개의 구절이나 몇개의 단어에 불과했으니까요. 그 총체적인 난독 혹은 남독의 나날동안 아가씨의 삶은 뜻한 적 없는 패턴을 그려 나갔습니다." p.205
누군가의 머리속을 읽는다고 그들의 말을 100% 이해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의 말을 100% 이해할 수도 없고, 내 삶을 내가 살고 있지만, 어쩌면 나 스스로도 나를 100% 이해 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 걸까.
표지 뒷편의 글귀가 책을 덮고 나서야 다시 보인다.
'"비극보다는 희극이 좋아?"
"뭐든 상관없지 않나요. 어차피 다 거짓말이니까"' p.140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