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기에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고구마 백만개를 먹는 듯. 마치 카프카의 소송이 떠오르는 전개였으나, 해학으로 넘어가 슬픔으로 끝나는 전개랄까.
책 한권에서 감정이 온갖 감정이 오고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장은 그저 은행에서 존재감 없는 과장 일 뿐이다. 본부장의 눈밖에 나 전국의 담 보물건을 보러다니는 중, 본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요직에 넣어주겠다는. 별다른 기쁨보다는 왜?라는 의문이 들던 어느날, 뉴스에서 서해안에 떠내려온 말뚝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차에 놓여진 메모 한장을 들여다 보다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트렁크에 갖힌 채 만 하루를 끌려 다닌다. 트렁크를 열고 나왔을 때는 납치범들은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스스로 납치 신고했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 CCTV도 없고, 차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고, 자신이 트렁크에 납치된 동안 들었던 뉴스는 어디에도 나온 적이 없다. 마치 나 조차도 나의 납치를 의심하게 만드는 전개라니.
하지만 다시 돌아온 곳에서 장은 이전과는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행동한다. 이전의 장과 다르게. 주변인들이 왜저러지.. 싶을 정도.
그러던 중 대한민국 곳곳에서 등장하던 말뚝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기는 고조된다. 바다 어디에서 발견되던 말뚝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 건물 안 등등 사방 곳곳에서 등장한다. 결국 알 수 없는 현상에 국가는 감추기 급급하고, 기여코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포고령.
사회 곳곳에 등장하는 군인들. 총알을 장전하고 그들은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시작한다. 군인이 통제하는 세상.
그리고 장의 집에도 말뚝이 나타났다.
언젠가 그의 집을 찾았던 경찰이 말한 최초의 말뚝임을 장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도. 다만 이름은 끝내 기억하지 못한채.
이 책은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도하고,
어느 현장에서 이름없이 죽어가야만 했던 노동자를 떠올리게도 하고,
세월호를, 이태원 참사를 생각나게 한다.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같은 상황이 이 책속에서 펼쳐진 느낌.
우리가 수많은 사회적 재난을 어떻게 잊었는지, 그리고 국가는 그 사실을 어떻게 감추기에 급급했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장 앞에 나섰던 말뚝은 어쩌면 내가 아니였을 때 0%의 상황이지만, 나일 때는 100%일 수 밖에 없는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장의 양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말뚝은 우리가 외면했던 것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양심이 표상되어 보인 것 아니였을까. 그래서 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내게는 다르게 보인 말뚝들.
그리고 그 앞에 섰을 때 표정없는 그 말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슬픔은 우리가 가슴 저편에 감춰뒀던 양심이라는 이름의 죄책감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그리서 책의 서두에 전개된 장의 납치 역시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 대해 말그대로 타자일 때 0이였던 것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100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듯 했다. 그러니 사회적 재난에 눈감지 말라는. 언제까지나 나에게 0일 수는 없다고 말뚝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뭘까.
고구마 100개를 먹는듯한 답답함으로 읽었던 이 이야기는 어느새 말뚝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3주기 추모식의 사이렌이 묵직한 슬픔으로 들린다.
사회적 참사에 함께하는 연대, 애도가 있어야, 그 다음을 나아갈 수 있음을, 같은 아픔을 겪는 이가 더 이상은 없게 해야 함을 말뚝들은 말하고 있다.
외면하지 말자. 외면하는 순간 나의 집 한가운데에 말뚝이 내 가슴 한가운데 말뚝이 박힐 수 있음을.
진짜 추천!
"목소리를 들었으니 서로 안부는 확인한 셈이었다. 다시 또 해주의 전화를 받는 날이 있다면 좀 더 밝게 통화할 수 있도록 농담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십 초 정도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웃을 만큼 재밌는 농담이 필요했다."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