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죽음이란 것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것을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다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것. 죽음에는 호상이 없다는 것. 타인이 보기엔 소위 호상이라는 말이 내게는 아니라는 것 정도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에 대한 죽음이란. 죽음이 내게는 무얼까라는 것은 글쎄. 하루가 소중하다기보다 나는 영원히 살 것같은 마인드로 살고 있다보니..(아무 생각없이 산단 소리다.) 
궁금했다. 죽음은 무엇일까.
저자는 철학자들이 말한 죽음에 대한 글들을 통해 죽음을 말하고 있다. 다만 철학자들의 언어이다 보니 내게는 조금 어려웠다. 이해한 바에 따르면 죽음이후의 삶을 말했던 이(결국 차원의 문제랄까, 한 세계를 접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무엇)과 니체의 영원회귀와 같이 계속해서 반복된 무엇을 말하는 삶. 그리고 죽음은 The End다 말했던 사르트르 같은 이. 보다 복잡하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이른 결론이였지만, (단순한 나같은 이가 보기엔) 죽음을 이렇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죽음에 이르는 길,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각들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에드먼드 후설의 장송 의례와 사르트르의 죽음의 생각이 와 닿았다. (사르트르는  본인의 생각과 다른 마지막을 맞이했지만..) 후설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에포케(일시적 판단을 중지하고 체험을 통해 나타나는 자기 내면의 의식으로 상황을 살펴보는 p.124) 행위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수용할 시간을 갖는 우리의 장송 의식과 관계가 있는 것이댜. 유족으로써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 고인이 없는 세계를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개념인 것이다.후설의 말이 내게 와 닿았던 것은 아마도 내가 가족의 장례식을 치르며, 사랑했던 그 이가 더 나와 함께하는 더 이상 이 공간에 함께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로소야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였는지도.
사르트르가 말하는 죽음은 비로소야 나의 죽음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막연히 했었구나를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죽음을 앞두고서 본인의 생각을 바꾸었다는 사르트르처럼 될지도 모르겠지만..나는 죽음을 ‘끝‘이라 생각한다. 니체의 영원 회귀도, 키에르케고르처럼 더 나은 곳으로 가는 단계 정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삶은 삶이고 죽음은 죽음일 뿐. 야스퍼스도 유사한 생각을 했으나 죽음에 종교적 의미 부여가 있기에 글쎄. 나는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시작이 있으니 끝이 존재한다는 것 뿐. 니체의 영원 회귀와 같은 영생(?)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자들의 생각에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긴하지만, 사실 좀 어렵고, 이 책  한권으로 그런 의미까지 설명하자면 끝이 없겠지. 말한들 이해할까 싶기도 하고,ㅎㅎ
 그저 나의 짧은 이해에 따르면 결국 그 부분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연관을 갖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경험하지 못하는 무엇을 삶 속에서 부여되는 의미가 있어야, 인간의 마지막이 좀더 덜 비참하지 않을까..하는 그런거? 
 아니면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종교적 의미 부여는 결국 우리가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목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죽어가면서 나는 죽음을 겪지만, 결코 죽음 자체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P.166라는 하이데거의 말이 새삼 콱 꽂힌다.죽음을 말해야하지만, 결국은 죽음을 통해 말하는 건 늘 삶이다. 어짜피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으니까.
진짜 난해한 주제다. 그래서 어려웠나.. 그래도 흥미로웠다. 죽음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경험하지 못하기에 매력적이면서 두렵고, 늘 궁금하면서, 결론은 늘 삶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주제.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