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의 책 소개 영상을 잠깐..보고 구매한 책이다. 그냥 궁금했다. "사소하지 않은 감정"이란 무엇일까. 소수자의 삶, 미국에서 아시아인, 아시아인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감정을 설명한 책이다.
고백하자면, 초반의 저자의 글이 오롯한 깊은 이해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다수자의 삶을 살았기에 당시 백인중심의 미국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아시안을 바라보았는지는 글과 뉴스로만 접했기 때문이였을까.
캐나다에서 잠시 머문적은 있으나, 캐나다는 미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고, 나 또한 외국인들이 많이 있는 곳에만 있었고, 언제든 그곳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였기에 저자의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긴 어려웠다. 다만 감히 짐작할 뿐.
어떤 주류사회에서 소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순간순간 뭔가를 판단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숨막히게 다가왔다.
비행기에서 끌려나간 베트남인을 바라보던 시선.
음..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 아시아인은 이래야 해..라며 바라보는 주류의 시선.
그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분위기. 마치 그것이 정답인것 처럼 말이다.
반대로 그런 정의 속에서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도 한편 흑인과의 비교 속에서 아시아인이 좀 더 낫지라 주류의 말들에 가해자의 행위가 동시에 발현되는 모순까지 가감없이 쏟아내는 그녀의 말들이 놀라우면서도 불편하고, 불편하면서도 슬프고. 아 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휘몰라치는 저자의 글들은 순간순간 가슴을 툭툭 치는것 같았다.
보부아르가 여성성에 대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인종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것 같았다.
"리처드 프라이어가 농담한 대로다. '나는 여덟 살때까지 아이였어요. 그후 깜둥이가 되었지요.'" p.108
흥미로운 점은 인종에 대해 "순수"라는 감정과 "모른다"라는 의미는 수치심이고, 그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라 저자는 말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 들어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는 정말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 모른척했었다. 그 때의 내가 생각이 났다. '모른다'라는 말 뒤에서 어쩌면 내가 가해자로써 행동했을지도 모를 무지의 소치인 것.
"내가 말하는 수치심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p.109
이 글이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알듯 모를듯 미국내 아시아인은 이런 모습일 것이라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짚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미국의 아시아인(특히 재미교포)를 바라보았던 것과 미국내 주류 백인들이 아시아인에 대해 바라보는 바와 일치했다는 점이다.
"아시아인은 근면하다, 성실하다"
이것은 미국내 주류세력이 우리를 그렇게 정의한 것이다. 그래야지만 존중받는 아시아인이 될 수 있다는 강요인 것이다.
이 정의(definition)는 결국 우리는 너희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면죄부이면서, 그렇지 못해 차별받는것은 너의 잘못이라는 그들의 숨겨진 의미인것.
드라마,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미국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식이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최근 플로이드 사망으로 흑인인권 운동이 일어났을 때, 위협을 느낀 부유한 백인이 다시 루프탑코리안을 언급한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이 기사가 굉장히 언짢았는데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소수자의 인종적 트라우마가 미국내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가 보여졌기에 그러했던것이다.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그들은 그저 소비되는 컨텐츠 중 하나였다는 사실. 그것이 나의 불편함 중 하나였던 것.
서구국가에서 우리는 소수자이다. 나는 소수자이지만 내 나라에 살았기에 인종차별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깊이 체감한적은 없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에서 소수자로써 살았기에, 매번 매순간이 어떤 긴장의 연속이다. 누군가의 차별적 언사에 매번 반응해야하나? 아니면 좋은 아시아인으로 웃고 넘겨야 하나? 그런 하나하나 사소한 어쩌면 그들은 인식도 하지 못하는 그런 말한마디에 나는 어떤 스텐스를 보여야하는지를 매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순간이.. 아.. 너무 싫다.
무지의 소치건 알고 그랬건 간에 그런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모든 순간의 감정이 "결코 사소한 감정"이 아니다라고 그것이 왜, 무엇에 기반해 나오는 말들인지를 직설적으로 설명한 그녀의 글은 뾰족하고 집요하게 그 감정의 중심을 찌르는 것 같이 찌릿하다.
또다른 맥락으로 최근 읽었던 소설에서 미국에서 아시아인 작가가 쓰는 주제들은 그들 민족의 서사 속 어려움 속에서 딛고 일어선 무엇을 그리는 것을 원한다라는 내용을 읽으며,... 아,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것 역시 같은 미국인이면서, 그들을 미국인이 아니라 타자화시켜 상품화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차별이였다 것을 알았따. 그렇기에 <딕테>를 썼다는 차의 죽음을 두고 차의 대리인이 작품을 작품으로 봐달라는 그 말이.. 참..
"소속되지 못한 상태" p.259
한편 소수자, 이민자들을 향한 적대의 말들이 조용히 뒤에서 이뤄지던 혐오의 말과 행동이 최근 트럼프 집권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직접적인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기에 저자의 분명한 언어가 시원함이 아니라 걱정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굉장히 미묘하고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들.
정말로 "너무 예민한거 아니야?" 라는 말들에 저자는 이 책을 내민다는 책 뒷표지의 글귀가 눈에 다시 들어오는 책.
"이 감정들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