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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ddus님의 서재
  • 서사의 위기
  • 한병철
  • 15,120원 (10%840)
  • 2023-09-15
  • : 7,991

피로사회라는 얇은 책을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꽤나 오래 읽었다.(너무 오래전이라 내용은 기억이 잘;;) 그 피로사회의 저자가 낸 책. 역시 다른 책들보다 얇고, 글씨도 컸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책도 오래 읽겠구나.
SNS, 넘쳐나는 기사, 각종 소식들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정보 과잉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서사가 아니라 그저 정보다. 구글이 만들어내는 것은 어떠한 일의 결과일 뿐이다.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우리는 잃은 것이다. 나를 전시하고, 타인이 쏟아내는 파편화 된 정보만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그런 정보들을 모아 스토리 텔링이라 말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스토리 셀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을 팔기 위한, 또는 나를 팔기 위한 달콤한 방법.

타인과의 유대 속에서 우리 속에 삶을 차곡차곡 쌓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사라졌다. 그곳에는 누군가와의 유대 없이 아예 타자라는 존재마저 지워버린 사회가 있을 뿐이다. 나는 저자가 말한 것 중에 타자마저 지워버리는 사회라는 말이 가장 무서웠다.
”스마트폰은 타자가 자기 자신을 알리는 시선을 완전히 앗아감으로써 실제와 우리 사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차단한다.“ p.94
보기 싫은 이를 터치 스크린 속에서 밀어버리면 그만인 사회라니. 그 작은 화면 속에는 “좋아요”라는 허구만을 쫒는 나와 또다른 무엇이 있을 뿐이다.

“좋아요”에 갖혀 버린 인간은 나의 모든 순간을 노출해야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강박에 갖혀버린다. 그것은 내 인생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허구의 세계 속에서 더 이상 도망갈 곳없는 실제와 허구 속의 괴리 가득한 나만 있을 뿐.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학교 다니면서 배워왔는데 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인 것.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야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야기는 “길고 느리게 머무는 시선 p.13”이기도 하고,  영원성의 시간이기도 하며, 우리가 우리 일 수 있는 오래된 지혜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글 중 ”설명을 삼가는 것 p.18”이라는 말이 깊이 남는다. 글과 글사이의 설명은 없지만 그 글만으로도 가슴에 깊이 와닿는 스토리.  저자는 그것을 이렇게 말했다.
“그 힘을 내면에 모은 채 보전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라도 다시 펼쳐낼 수 있는 것”p.19
내가 수많은 만화책을 보았지만, 모든 그림에 설명이 포함된 만화에서 기억에 남는 컷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인생을 살며 미술관은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가보았지만, 여전히 깊은 인상으로 남는 그림들이 더 많은 것이 같은 의미일까.
타인이 그려 놓은 그림 속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합쳐져 나를 통해, 또 다른 타인을 통해 그 그림은 어떤 책들은 순간의 시간이 영원을 만들어낸다.

경험이 사라지고, 감당하기조차 벅찬 정보 속에서 지워져 가는 ‘나’에 대해 또 ‘너’에 대해 우리는 어떤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돌이켜본 시간 속에서 내가 올렸던 수많은 게시물 속에서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순간의 컷인 사진 한 장 속에서도 이야기가 남기도 하지만, 돌이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희미해버리는 사진도 있다.
내가 찍은 나를 두고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의 이야기에 공명 해주는 이가 내 곁에는 있는가.

조금은 어려웠지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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