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를 소개하는 책에서 알게된 “딩씨 마을의 꿈” 이 책은 중국작가 옌렌커의 장편소설이다. 놀라운 점은 옌렌커라는 작가가 쓴 책이 대부분 중국내에서는 금서라는 점이다.
금서. 참 낯선단어다. 위해도서라든가 뭐 이런말이 있긴하지만 어떤 창작물을 금서로 지정하는 나라는 별로 없는데,, 우리도 냉전시대와 독재를 지나면서는 사실상 없어진 단어 아닌가.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 책이.
이 책은 중국에서 일어났던 실제의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중국 내에서 매혈 즉 피를 사고파는 행위를 국가가 권장했던 시기, 딩씨마을이라는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국가가 권장하는 매혈 사업이 열린다. 딩씨마을의 촌장이였던 리싼런은 그 전에 국가가 권장하는 대부분의 사업을 다 진행했으나,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매혈 사업을 권고받았으나 그는 반대했다. 왜 피까지 팔아야 한단말인가.
하지만 매혈이 돈을 된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촌장을 비난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매혈은 딩씨마을의 사업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매혈은 큰 돈이 되었고, 국가시설에서 시작된 매혈 사업은 딩씨 어른(화자의 할아버지)의 큰아들인 딩후이가 사설매혈소를 만들면서 사업은 더 크게 확장된다. 딩후이는 그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위생을 신경쓰지 않고, 위생솜의 반복사용, 주사기 재활용 등으로 인해 에이즈가 순식간에 퍼졌다. 처음에는 이 병이 무엇인지 몰랐다가 (책속에서는 ‘열병‘이라고 일컬음) 병에걸린 이들이 맥없이 죽어나가자 사람들은 알아 챘다. 매혈이 병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그리고 딩후이가 했던 모든 행위가 병을 퍼지게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점은 중국당국의 관리되지 않은 매혈사업으로 인해 국민이 죽어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의 화자는 12살의 죽은 어린아이다. 딩씨마을에서 매혈로 돈을 번 딩후이의 아들이다.
딩후이의 행위가 열병을 퍼지게했다는 사실로 누군가 독을 바른 토마토를 먹고 화자인 ‘나‘는 죽었다.
죽은 아이의 눈으로 본 마을의 상황이 그려진 이 책은 그래서인지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없다. 그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이야기 뿐. 이 아이가 감정을 드러낼때는 책의 클라이막스인 마지막에서 뿐이다.
12살 아이의 눈으로 본 딩씨마을은 국가가 저버린 작은 사회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해 보이지만, 수많은 이들의 병에 대한 가해자가 가해자가 아닌 것로 둔갑하여 그 죽음을 이용해 돈을 벌고, 누군가는 그 사태를 책임지기 위해 끝끝내 마을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이는 죽음을 앞에두고도 권력을 탐하고, 어떤이는 죽음을 앞에두고도 사랑을 외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낯선 부분은 “에이즈”라는 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열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병에 대해 아직은 어떤 프레임이 없던 시기였기 때문일수 있으나 병에 걸린이와 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에 대한 차별은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
이 책이 왜 금서 였을까.
국가의 실책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갔기에 그랬나?
하지만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 피해로 인해 죽어간 이들에 대한 레퀴엠은 누가 불러줄 것이며, 또한 그들이 남기고 간 유산. 즉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어떻게 후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책 속의 딩후이는 아마도 국가를 뜻할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을 위기에 놓였지만, 나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에 그는 죄책감이 없다. 그렇기에 그의 아버지가 권하는 개두 역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딩후이의 아버지 딩씨 어르신은 그런 아들을 키워냈다는 죄책감으로 사태의 해결을 위해, 병에 걸린 이들을 온몸으로 끌어 안는다.
아픈이들의 상황을 해결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어떻게든 들어주려하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삶을 좀더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 저자는 경고를 날리고 있다. 가해자의 논리에서 반성없이 피해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돈의 논리로 보는 사회가 계속 된다면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던 할아버지처럼 될 것이라고. 그 것이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결말은 어떤 모습이라고도 말이다.
이 책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는 과연 이 책속 딩씨 마을과 다를 것이 있을까? 수많은 이들에 대해 반성없는 사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동체, 오로지 자본의 논리만이 남은 사회가 가져오는 폐허같은 미래..
글쎄.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지 않을까.
추천.
“나비가 날아왔다. 날아왔다 다시 날아가버렸다.
꿀벌이 날아왔다. 날아왔다 다시 날아가버렸다.
쥐깨풀에서는 아린 향이 났다. 차갑고 아린 향은 꿀벌과 나비를 불러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집 마당에는 봄볓이 가득했다.”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