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토리 대상” 단편수상작품집이라.. 스토리 대상이라는 분야와 수상작들의 제목이 너무나 흥미로워 읽은 책
“돈까스 망치 동충하초”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제목.
나는 이 빌라에서 누구도 마주치면 안된다. 그저 사람이 있는 기척만 낼뿐, 누구와도 만나면 안된다. 이것은 이 집을 계약할 때의 조건이였다. 이 집을 중개해준 이는 친구 소영. 매우 싼 가격에 강남의 불빛이 보이는 빌라다. 재개발로 인해 사는이가 거의 없는 이 빌라의 아래층에서 자꾸 소리가 난다. 퉁퉁퉁. 어느날 밤 소영과 실체를 확인하고는 둘다 말이 없어졌고, 나는 더이상 그곳에 살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재개발을 앞둔 빌라에 살던 전주인은 최대한 그곳에서 살기위해 돈을 들여 어마무시하게 리모델링을 해놓았고, 나의 사장은 그것을 이용해 수입을 올리라 말한다. 팔아야하는 물건보다, 그것의 배경, 누구나 탐을 내는 그곳에 사는 이를 바라보는 이의 욕망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것이 인플루언서의 삶이니까.
밤마다 들리는 소리. 그것의 실체를 알고 서도 떠날 수 없던 어느 날, 나는 그곳을 떠야만 했다.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현대판 고려장과 좀비물이 이렇게 만날 수도 있구나. 현대의 과학이 영생을 연구하기 위해 좀비를 이용했고, 그 연구의 일환으로 노인을 이용했다. 노령화 인구의 증가는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였으니까. 한정된 자원 안에서 말그대로 나눠먹을 파이가 적어진 현대, 결국 수명 연장은 모두에게 독이 되었다. 그래서 생명 연장을 미끼로 노인들을 좀비로 만들었다. 다시 인간으로 만드는 바이러스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좀 두려워졌다. 좀비라는 대상이 없더라도, 우리 사회가 지금 늙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가 보였달까. 함께 가는 대상이 아니라, 짊어지고 가야 할 대상 취급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에 그러했다.
장서갈등도 그런 맥락 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실 좀비가 아니더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 제목이 현실에서도 드러나지 않는가.
아버지를 찾는 이와 아버지를 놓고 가는 이. 결국 노인을 나와 다른 대상이라 취급하는 세상 속에서 결국 고통받는건 나라는 사실이 새삼 슬픈 이야기.
“청소의 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가진이와 가지지 못한 이의 철저한 계급이 보여지는 작은 사회 모텔.
그곳에서 나는 종수에게 모텔일의 대부분을 맡긴다. 그를 잘 챙겨주었고, 많은 자율권을 부여했다. 그렇게 모텔이 잘되어가던 때, 코로나로 인해 봉쇄령이 내려졌다. 아무도 오지 않는 모텔. 정부는 노숙자를 수용해달라고 요청하고, 그에 따른 지원금을 제공한다. 나는 내 모텔에 노숙자를 받기로 결정하고 모든 일은 종수에게 맡긴다.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나는 더이상 모텔 일을 할 수 없다는 핑계 뒤에서.
노숙자들의 뒤치닥거리 및 수금 모두 종수의 몫으로 남겨졌다. 종수가 없으면 안될 것 같은 모텔도 결국은 자본으로 정리가 된다.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세상인 것일까. 종수는 왜 떠난 것일까. 나처럼 될까봐? 아니면 지긋지긋한 지금이 싫어서 일까. 문득 내가 돈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장어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가”
장어에 방점이 맞춰있는듯 보이지만, 장어가 아니라 장어를 보기 위해 심해로 들어가는 인류. 이 내용 속에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드러난다. 장어가 어떻게 산란하는지 미스테리를 파헤치기 위해 장어 전문가 장박사와 특수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드론을 제작할 수 있는 주희의 만남은 인류가 절대 도달할 수 없었던 심해의 비밀을 파헤치는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여기서 절대 도달되면 안되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아주 오래전에는 종교의 영역이였던 부분이 일정 부분 과학으로 증명이 되며, 종교가 설 곳을 잃은 것이라했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종교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으니. 하지만 정말 그 끝을 본다면, 그것은 종교의 멸망일까? 아닐까? 라는 질문과 정말 인류가 볼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 되돌아오는 이야기.
“톡”
극한에 다다랐을 때 인간의 생존 욕구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지고, 치졸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잠수함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생존하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탐색자라는 명칭을 붙여 투표로 인간을 잠수정 밖으로 내보낸다. 단 한명도 돌아오지 못한 그곳으로. 그리고 그 잠수정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중류를 포획하여 그들의 피를 뽑고, 살을 취하고, 각종 실험을 행한다. 어떻게 해도 그들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며 그 공간에 남는 사람과,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하는 사람. 누가 더 생존자에 가까운 삶인지가 궁금해지는 작품이였다. 인간의 잔인성은 정말 한없이 두려워지는 작품이기도 했고..
정말 각 작품들은 상상도 못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작품 작품 속에는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돈에 사로잡힌 “돈까스 망치 동충하초”, 현재의 안락에 사로잡힌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자본계급에 사로잡힌 “청소의 신”, 미지를 파헤치는 사람과 현재를 지키려는 가치에 사로잡힌 “장어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가”, 그리고 생존에 사로잡힌 “톡”.
지금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단편적 모습들의 총체가 이 스토리 대상 각 작품 속에 있었다.
그래서 스토리는 신선했지만, 그 안의 인간들의 모습은 진자 씁쓸했달까.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저 작품들 속의 인간 군상 속에 내 모습도 보였기에 더 입이 썼는지도.
재밌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