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이 책 정말 얇다. 전체가 1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책인데, 정말 어려웠다. 나한테는. 이미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20년이 지나고서도 여전히 판치는 극우세력, 신나치세력에 대해 아도르노가 강연한 것을 발간한 책이라기에 쉬울줄 알았던 나의 생각은 오산이였다.
그럼에도 짧은 이해 속에서도 신기했던 것은 1960년대의 극우주위에 대한 아도르노의 강연이 왜 지금에도 연속성을 갖는것일까..싶은 것이였다.
대한민국에서 언제부터인가 정치가 지나치게 양극화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원래 정치란 그런것이지 싶긴했지만, 지난 대선에서는 굉장히 뚜렷했고, 12월 3일 이후 보여지는 극우세력의 부상은 내게는 꽤나 낯설고 힘든 광경이였다. 그래서 더 이 책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1960년대 신나치, 신 극우세력의 부상에 대한 아도르노의 생각이다.그는 이런 세력의 부상을 그저 피곤한 무엇으로 간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고 단시간에 나타난것도, 단시간에 끝날것도 아님을 다음의 이유를 통해 설명한다.첫째, 자본주의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 이것은 곧 있는자와 없는 자의 구분이 점차 명확해지고, 현대에 와서는 사실 그 간극을 넘어갈 사다리조차 묘연한 상황이다. 당시로써도 기계화 자동화되는 사회 구조적 변화속에 소외되어 배척당하는 이들이 받는 생존이 위협받는 다는 것.
둘째는 냉전상황 속에서 나의 생존권이 위협당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당시의 “공산주의”를 배척해가는 과정이 놀라웠다. 명확한 실체가 없는 이념을 적대시함으로써,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위협하는 모든것을 이데올로기화함으로써 실존이 위협받는다는 비합리의 모순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이런 논리가 왜 지금에도 이리 익숙한 것일까)
“(…) NPD의 성공은 나중에 가서야 대단히 절박해진 어떤 불안과 공포를 선취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포의 예견이란 말이 지금 극우주의에 관한 통상적인 견해에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핵심적인 무언가를 건드린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파국의 감정과 맺는 대단히 복합적으로 까다로운 과계로서, 극우주의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p.19
마지막은 특정 사람들이 갖고 있는 “권위적인 인격”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관계를 맺는 즉 타인과의 교감을 원치 않는 자들이 가진 내제적 콤플렉스의 발현이라는 것인데,, 훔. 요즘 청년세대에서 나타나는 남녀갈등의 문제도 이런한 것일까?아니면 장서갈등의 문제인 것일까?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발현인 것인지, 아니면 절대자로부터 지배받고 싶은 인간 심리의 발현인 것인지? 어렵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그때도 지금도 극우의 등장은 어떤 특정 상황으로 인함이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 의식의 발로라는 점에서는 이 현상이 결코 가볍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이미 자기 논리에 빠져 모순된 상황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지금의 상황은 어쩌면 1960년대 독일에서 신나치, 극우의 등장 역시 꽤나 힘든일이 아니였을까 싶기도 했다. 독인은 그 이후 법률로써, 정치로써 꽤나 꾹꾹 눌러왔음에도 지금에 와서 급진 이슬람 세력으로 인해 발생된 난민이슈는 다시 극우의 본격적인 정치세력으로써의 등장을 가져온 사실이…. 남의 나라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도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60년전의 강연이 지금에도 시의성을 갖는 다는 사실은 어쩌면 60년후에도 여전히 유효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말뿐인 통합이 아니라 진짜 통합을 이끌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세력의 등장을 배척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삼으려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됬든 이미 등장했고, 그저 불쾌한 세력으로만 간주하기보다 보다 면밀한 원인을 파악해야 그 다음 단계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했다. 너무 나이브한가..
어렵다 책도. 상황도. 해결도.그래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