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2024년을 달궜던 작가 중 한분. “맡겨진 소녀”나는 이 제목을 보고, 정 반대로 생각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과 어머니의 5째 출산을 두고 먼 친척에 맡겨진 나. 낯선 곳에 아빠는 나를 두고 떠났다. 킨셀라 부부는 ‘나‘를 꽤나 반가운듯 맞이하지도, 그렇다고 귀찮은듯 맞이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첫날. 나는 실수를 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습한 방에 재워 아이의 매트리스가 젖었다고 하며 모른척 한다.
그리고 따뜻한 밥을 먹이고, 예의를 가르치고, 나의 손을 잡아주고, 내가 뛰는 것을 보며 칭찬해준다. 책을 읽어주고, 나와 함께 옷을 사러가는 여름을 보내던 중, ’나’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날 밤 아저씨는 나의 손을 잡고 해변으로 산책을 갔고, 나는 아빠가 아저씨같이 나의 손을 잡아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저씨는 내게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아이’라는 칭찬을 해주고, 나는 알게된다.
’맡겨진 아이‘ 라는 제목의 대상은 어디일까.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진 아이일까. 아니면 나의 집에 맡겨진 아이일까. 정서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아이를 돌보지 않는 나의 부모와 나의 부모는 아니지만 부모보다 더 아이과 교감하는 킨셀라 부부.
그리고 마지막에 “아빠”라 불렀던 나의 말은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단연코 나는 후자다.
이토록 짧은 여름의 시간속에 좋은 어른과의 교감에 어색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체득하여 성장하는 어린아이의 이야기가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작가의 담백한 글이 보여주는 묘미인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4년에 단연코 핫했던 작가였던 것일까.
묘하게 빨간머리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맡겨진 소녀”라는 제목 뒤에 있는 옅은 슬픔을 책의 표지에 있는 문구처럼 “찬란한 여름”으로 바꿔준다. 다만, 끝에서 다시 보여지는 슬픔이 있지만.
추천.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 p.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