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을 먹는 유화가 섭식장애일까, 남의 시선을 먹는 수미가 섭식장애일까" 라는 글귀가 단번에 눈에 들어와 망설임 없이 읽은 책.
수미는 우아미필라테스를 운영하는 강사이며, 신도시 송도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필라테스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학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발레를 했던 경력과 아이 둘을 낳고, 40이 넘은 나이에도 20대의 몸을 유지하는 수미. 부유한 가정에서 의사 남편을 만나, 틈틈히 몸을 손보고, 피부를 관리하여 아이들을 좋은 시터에 맡기고 사는 소위 부유층 사모님.
수미의 삶은 곧 보여주는 삶이다.
석진은 그런 수미의 트로피같은 남편이면서 바쁜 수미 대신 아이를 돌볼줄 아는 사람이다. 가난이 지긋지긋 했던 석진은 개천에서 용나듯 의대를 나와 소화기내과를 지원 페이닥터로 일하고 있다. 그런 석진은 이제 개원을 앞두고 있다.
오랜 기간 다져온 경력으로 내시경의 소위 달인이 되어버린 석진 앞에 어느날 부터 면도날을 삼킨 유화가 나타났다. 알 수 는 없다. 왜 면도날을 삼키고 오는 것인지.
벌써 아홉개째.
개원한 석진의 병원앞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하는 내과가 개원하면서 수미네 집의 금전적 도움과 수미의 열성적인 인테리어로 번쩍한 병원도 수개월째 적자.
그런 석진에게 수미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며 봉사활동을 제안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즐비한 남공단에 봉사활동을 하던 중 유화를 만난다.
유화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석진.
그런 유화에게 미래를 약속한 남자가 있다는 말에 석진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모든 것에 달관한듯 보이는 유화가 석진은 궁금하다.
굉장히 통속적인 소재이다. 소위 관종. 타인의 욕망에 기준이 맞춰진 세상속에서 말그대로 스탠다드한 수미. 그런 수미가 나의 가난의 냄새를 덮어주는 향수 같으면서도, 가까이 하기엔 불편한 석진. 석진의 직업과 가정에 충실한 남자라는 것이 트로피 허즈번드로 여기는 수미.
그리고 꺼낼 수 없는 면도날을 몸속에 숨긴채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지만, 스스로의 삶에 갇혀버린 유화.
어쩌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수미, 어떤 면에서는 유화, 어떤 면에서는 석진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누구의 삶도 정상적이지 않지만, 누구의 삶도 비정상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싶은 이.. 딜레마. 뭐지..?
타인의 욕망을 비추는 삶.
커튼콜 뒤에서 지극한 현실에 치이는 삶.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듯 보이지만, 사실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 삶.
시티-뷰. 내가 세상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뷰. 하지만 세상도 나를 보고 있다.
어쩌면 나의 바닥을 모든 이가 다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만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마흔 둘이 보기에 서른둘은 어린아이죠."
"난 당신보다 훨씬 늙은 여자예요. 어쩌면 날 때부터 늙어있었는지도 모르죠."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