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제목이 주는 의미를.
책은 현재의 화자인 경하와 인선을 통해 4.19부터 광주5.18, 제주4.3까지를 말한다. 그저 국사교과서에서만 듣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겪었고, 기억했던 이들에서 그 다음 세대로, 또 다음 세대로.
제주에 휘몰아친 절멸의 광기가 지나가고 살아남은 이의 이야기. 살아남아 잃어버린 가족을 놓을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작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작별 할 수 없는.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할머니 같은 엄마의 입에서 인선으로 전해지고, 인선이 나에게 전해주는.그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인 것만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이유도 모른채 집단 학살을 당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내 가족이. 내 친구가. 그리고 내가.
”젖먹이 아기도?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무엇을 절멸해?빨갱이들을.“ p.220
사람들에게는 잊혀졌지만, 살아남았지만 그 시간 속에 갖혀 잊히지도, 잊을 수도 없는 시간을 사는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그때는 지금이다.
그래서 5월의 그날에 대한 글을 썼던 나는 어쩌면 고작 악몽에 시달리지만, 내가 결국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경계에 서고서야, 제주의 그날을 나는 오롯이 체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유도 모른채 죽어가야했던 고통을,
감옥에서 알지 못하는 것들로 인해 고문받으면서도, 내 아픔보다 젖먹이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절규를 잊을 수 없다는 이의 고통을,
가족을 잃고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평생을 찾아다녀야 하는 이의 고통을 말이다.
폭설이 몰아치는 제주. 하지만 고요함에 묻혀버린 그날을 말이다.
제주도에 내리는 눈은 아름답지만, 어쩌면 누구도 들어주지 않던 많은 이들의 울음을 덮어버린 차가운 현실과 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의 빰에서 녹지 않는 그 눈이 문득 소름끼치던 순간이였다.
나도 그 때의 참상을 사진으로 본적이 있다. 말그대로 시체들이 쌓여있는 구덩이 앞에서 망연자실 서있는 여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였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사진이 떠올랐다. 그 사진속 여자분이 인선의 어머니 같아서,, 그때는 그냥 사진 한장이였는데, 지금은 왜 이리 생생한 현실로 다가오는지..
결국 그토록 찾아헤매던 삼촌의 뼈조각 하나라도 찾는다면, 그건 안도일까 절망일까.
아주 희박한 확률로 살아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라도 버티는 시간이 나은걸까 아닌걸까.
모르겠다. 왜 이런 어느것도 한치 더 나은 것이 없는 시간을 버텨야하는 일이 우리 안에서 일어난 것인지.
인선의 어머니에게는 "작별하지 못한 시간"이였지만, 우리에게는 "작별하지 않는 시간"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달라졌다. 책을 읽기전에는 이 제목이 슬펐지만, 책을 읽고나니 결연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빰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엄음이 낀다는 걸.' 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