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80분짜리 테이프처럼 딱 그 시간이 지나면 모든게 1975년 그 이전의 기억밖에
남지 않는 박사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면서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박사의 생계는 홀로남은 형수에게 의지하고 별채에 따로 살면서 수학을 연구하며 지낸다.
박사는 현재 예순네살에 수학을 전공하던 교수였는데 모습은 나이보다 초췌한게
몸 구석구석까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는 사람같았다.
매번 기억을 잃어 항상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네 생일은 몇일인가?" , "제 생일요? 2월 20일인데요..."
"오오 2월20일, 정말 귀여운 숫자로군. 220이라", 잘 봐! 내가 대학다닐때
초월수론에 관한 논문으로 받은 시계인데 여기 새겨져 있는 NO.284란 숫자, 보이나?"
220과 284라구"
"글쎼요. 양쪽다 세자리 수고.... 음, 비슷한 숫자 아닌가요? 큰차이 없는것 같은데,
백의자릿수가 같고, 나머지 자릿수는 다 짝수이고..."
"자네 관찰력이 대단하군" "물총새가 순간적으로 빛나는 등지느러미에 반응해서
수면으로 급강하하는 것처럼, 직감으로 숫자를 파악했어"
자네 약수가 뭔지는 알겠지? 220은 1로 나누어 떨어지지, 220으로 나누어 떨어지고...
"자 봐! 220의 약수의 합은 284야. 그리고 284의 약수의 합은 220이지"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쌍씩 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의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박사는 수를 사랑하는 마음도, 어떤 대답도 멋지게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박사와 내가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나에게 10살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였다.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데 일을하러 오면 혼자서 놀고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나자
내일부턴 아들과 함께 오라며 강력히 주장했다.
다음날 박사는 아들을 보았고 박사의 메모지에 쓰인
새파출부와 "아들10살"이란 메모를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할 틈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두팔을 벌려 아들을 포옹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잘 왔다. 고맙다, 고마워"
박사는 아들의 모자를 벗기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평평한 머리를 만지며 애칭을 지어줬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루트가 물어보는 말에는 수학에 전념하고 있을 때에도 작업을 중단하고
기꺼이 루트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한 루트는 박사를 많이 따르며 어리광도 피웠다.
박사와 루트는 야구를 좋아하고 한신타이거즈의 팬이다.
하지만 박사는 70년대 투수 에나스의 팬이지만 현실의 에나쓰는 이미 은퇴를 하였다.
그런 박사를위해 나와 루트는 에나쓰의 은퇴사실을 숨겼다.
에나쓰의 활약상이 기록된 책도 읽으며 조금이라도 박사가 느끼는 에나스 선수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한번도 야구경기를 보지 못한 박사를 위해 야구장에 데려가기도 하였다.
이 외출로 박사는 몸살이 나서 가정부의 규칙을 깨고 하룻동안 간호를 하였지만
형수가 사실을 알고 클레임을 걸어 해고를 당했다.
영문모르게 박사를 만나지 못했지만 루트가 박사를 찾아간 것이 계기로
형수의 이해를 받아 다시 가정부로 일하게 되었다.
루트의 11번째 아름다운 생일파티를 박사가 준비하며 그런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고생끝에 에나스선수의 현역시절 프리미엄카드를 구해 선물 하였다.
박사의 애정이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박사의 기억은 사고이전의 기억뿐만이
할 수 없게 되면서 요양원에 보낸다는 형수의 전화를 받았다.
"시설로 찾아뵈어도 될까요?" "그럴필요 없어요 거기서 다 해주니깐.
그리고 내가 곁에 있으니깐." 하며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도련님은 평생 당신을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나는 평생 잊지 못하죠!"
나와 루트의 요양원 방문은 박사가 죽을때까지 몇번이나 계속됐다.
루트는 대학에 들어가 무릎을 다치기 전까지 2루수로 활약을 하다
이번에 중학고교원시험에 합격하여 내년에 수학선생이 된다.
박사가 우리와 함께한 기억들은 사라졌지만 박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수학의 아름다움과 아낌없는 사랑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시간을 증명하 듯 박사의 목에걸린 에나스 선수의 프리미엄카드가 마치
박사의 ID카드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언젠가 박사의 집에서 발견한 박사의 보물통엔 타이거즈선수들의 카드가
보관되 있었고 그 아래엔 한장의 흑백사진이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그사진의 모습은 한눈에도 젊고 활기넘치던 박사와 다소곳이 앉아있지만
서로의 애정이 느껴지는 젊은시절 형수가 있었다. 그 아래 박사의 필체가 쓰여져 있었다.
"영원한 내사랑 N에게 바침, 당신을 잊어서는 안될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