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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ingu님의 서재
  • 마음
  •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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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5
  • : 12,096

마 음

나쓰메 소세키

 

나는 어렵지 않은 가정형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을 지냈다. 친구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해수욕을 하려고 가마쿠라에 가서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이 생활하는 선생님에게 끌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이 그 당시에는 생소했던 서양인과 함께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초연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 당시 나의 젊은 혈기는 무료한 일상생활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경계하고 싫어했던 선생님이 나와의 교류를 허용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무엇인가 이득을 취할 요령이 아니라 순수하게 선생님을 좋아했고 좀 더 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선생님도 마음속으로는 좀 더 순수하게 인간적인 교제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선생님과 만나는 동안 선생님은 너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조용조용한 말씨며, 집 안에 서재도 너무나 흐트러짐 없이 잘 정리 정돈되어있다. 서재에 무언가 어지러워져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이 마치 흐트러짐이 아예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재가 그렇듯 선생님의 마음역시 무엇인가에 강박되어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지키기 힘든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힘을 다해 세상과의 교류를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시가야 묘지에 묻혀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일 역시 의무적으로 자신의 기준에 맞춘 기계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나의 어린 시절과 다름없이 밝고 순수하지만 세상을 잘 모르는 학생으로 지냈다. 매우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친척인 숙부의 손에서 길러졌다.

아버님이 생전에 그렇게 신뢰하였던 숙부가 ‘돈’에 눈이 멀어서 재산을 빼돌리고 선생님을 마음대로 휘두르려 했던 일이 선생님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 어린나이에 세상을 불신하다가 만난 아가씨라는 존재는 마치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비쳐졌을 것이다.

보통의 때가 묻은 성인 남성들은 한 여성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 대상을 신성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처음 여성을 알게 된 사춘기의 학생이라면 충분히 아름다운 여성에 대해 눈부시다 못해 신성시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그 대상을 마치 결점이라고는 없는 이상적인 여성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리기 쉽다.

아가씨의 존재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선생님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대신할 깨끗한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 부부의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님의 마음속에 신성시 된 그녀의 존재에게 자신의 고민을, 어둡다고 느끼는 마음을 알리기 싫었을 것이다. 자신의 좋은 면만 알려주고 싶고, 만약 어두운 마음을 들킨다면 그녀가 영영 멀리 달아나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결국 선생님의 이러한 숨기고 싶은 욕심 때문에 부부생활에 일종의 벽이 생긴 것이다.

선생님은 친구 K의 어려운 형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려는 여리고 인자한 마음을 가졌다.

자신보다 멋지다고 생각되는 친구를 만나면 자격지심도 가지고 그런 친구와 동일한 여성을 두고 사랑의 경쟁을 한다면 불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는 마음이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K에게 심한 말을 한 것은 물론 잘못된 행동이나 그로 인해 친구K가 자살을 한다고 하여도 사실 선생님의 직접적인 잘못은 아닌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살 거라면 당당하게 나 때문에 친구가 자살한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면 그만일 텐데 천성적으로 마음이 여리고 도덕적 기준이 높은 우리 선생님은 그러지도 못한 것이다.

몇 년이고 그 때 그 잘못된 행동을 곱씹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마음속에서 눈덩이처럼 키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아가씨’가 아닌 선생님과 똑같은 사람인 ‘아내’와 함께 이야기해보았으면 선생님은 아직까지 웃으며 나를 반겨줬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나에게 이러한 장문의 편지를 보낸 것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반은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이 편지의 내용을 아내분에게 이야기해야 하느냐, 아니면 선생님의 바램처럼 이 사실을 조용히 묻어놔야 하는지를 두고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다.

고향에 아픈 아버지와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골사람인지라 순박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무지해보이고 어리석어 보였다.

선생님은 이러한 우리 부모님과는 다른 존재로 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무지한 아버지도 섬세한 선생님도 역시 천황과 노기부부의 죽음을 애도하며 안타까워했던 동일한 세대를 지내온 동일한 인간이었다.

고민과 후회도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 분들이 없는 지금에서야 나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또 그 분들이 어려워했던 문제들이 나에게 찾아온다면 나는 혼자 생각하지 말고 세상과 함께 풀어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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